한국의 작가(론)들

김동리

자크라캉 2008. 6. 18. 09:57

김동리


장기간의 투병 끝에 17일 작고한 작가 김동리는 반공주의적 순수주의라는 한국소설의 한 흐름을 창작과 이론 두 분야에서 주도한 인물이다. 샤머니즘과 토속성을 기조로 삼아 시간의 진행 속에서도 변치 않는 민족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그의 문학은 가장 민족적이며 따라서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찬사와, 팍팍한 현실에 등 돌린 몽환과 주술의 포로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수반하고 있다. 1935 <중앙일보>에 단편 `화랑의 후예', 그 이듬해에 <동아일보> `산화'가 당선되어 등단한 동리(본명 김시종) `무녀도' `바위' `황토기'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30년대에 이미 나름의 문학세계를 확고히 했다. 그 자신 “세계의 여율과 작가의 인간적 맥박이 어떤 문자적 약속 아래 유기적으로 육체화하는()”이라고 표현한 그 세계란 인간과 섭리 사이의 치열한 대결 또는 조화를 축으로 삼는 것이었다.. 일찍부터 세계문학전집과 동서의 철학 및 사상•종교서적 등을 섭렵한 그는 나름의 뚜렷한 문학관을 수립해 자신의 창작을 안받침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창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사회 전체의 혼란과 대립이 문학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던 해방공간에 그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는 해방 직후 좌익계 문인들이 발빠르게결성한 문학가동맹에 맞서 1946서정주,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등과 함께 반공문학단체인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한다. 이 단체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 뒤인 1949 12월 이념적 색깔이 비슷한 문필가협회와 합해 한국문학가협회로 발전하며 동리는 이 단체의 소설 분과위원장에 피선된다. 동리 자신 대한민국 정부와 `정신적 내지 역사적 성격'을 공유한다고 밝힌 바 있는 한국문학가협회는 지금의 한국문인협회의 전신으로 이후 이땅의 제도권 문학을 대표하게 된다. 동리는 나중에 두번에 걸쳐 한국문인협회의 이사장으로 뽑히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은 그가 이들 단체와 그 소속 문인들의 창작의 지도원리가 되기도 한 문제적 평론을 거듭 발표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 평론이 자신과 문학적 대척점에 놓인 작가•평론가들과의 논쟁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 문학적 의의는 지대하다. 일찍이 30년대 말의 선배 작가 유진오와 벌인 논전에서 시작해 해방 공간에는 좌익계 소장 평론가인 김동석김병규, 50년대 말에는 당시의 젊은 평론가 김우종•이어령 등을 상대로 펼친 불꽃 튀는 논쟁에서 동리가 이룩하고 지켜낸 문학적 화두는 `구경(究境)적 삶의 형식'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구경적 삶의 형식'이란 달리 말하면 인간의 원형적 조건 또는 운명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일제 말기인 30년대 후반과 해방공간, 그리고 민족적 분단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많은 수의 동료 문인들이 문학과 현실의 불가분의 관련성을 강조할 때에도 동리는 역사와 현실이 휘발해 버린 어떤 민족의 원형적 공간을 상정하고 그 안에서 운명이라는 이름의 알 수 없는 힘에 맞서고자 했다. 그 대결의식은 `역마' '사반의 십자가' `등신불'과 같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구현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 중의 문총구국대 부대장, 516민족문화상, 국정자문위원 등으로 미끄러지기도 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서 많은 후배들을 키우기도 한 동리는 두 번째 부인이었던 작가 손소희가 먼저 세상을 뜬 뒤 30년 연하의 작가 서영은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한국의 작가(론)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청준  (0) 2008.06.18
김승옥  (0) 2008.06.18
채만식  (0) 2008.06.18
샤갈 (러시아/프랑스 화가) [Chagall, Marc]  (0) 2008.03.14
조향 (한국 시인) [趙鄕](1917. 12. 9 경남 사천~1985. 7. 12 서울)  (0) 2008.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