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동시문학>>2008.
[창작노트]
기차가 떠나신다.
동짓날 찹쌀을 빻아 하얀 달을 빚어 새알로 띄운 팥죽이 먹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는 팥죽 만들기가 쉬운 줄 아냐며, 차라리 시장에 가서 한 그릇 사 먹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끝내 팥죽을 먹지 못했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을까? 아내는 해를 바꿔 드디어 오늘 팥죽을 끓인다. 아이들과 다탁에 모여앉아 하늘에 둥글고 환한 새알이 뜰 때까지 열심히 달을 빚었다. 곧 아이들과 함께 만든 작은 달덩이들이 우리 기족의 몸 속을 환히 비춰줄 것이니, 무자년 한해 또 모두 무쟈게(무지하게) 건강하고 명랑하며 화목하게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강아지들은 마지막 달까지 다 건져 먹고나서야 씻고 이부자리에 들었고, 아내는 피곤한지 잠자리에 들자마자 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내는 금방 요란하게 코 고는 소리를 낸다. 아이들은 아내의 코 고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는 모양이다. 바로 옆에서 자면서도 깨는 법 없이 참 잘도 잔다. 나는 아내의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와 어제 쓰다만 원고를 정리한다.
가족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가족은 늘 내가 쓰는 글들의 화두이다. 가족은 내 시의 원천이요, 내 삶의 깨달음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화목한 집안에서 자라지 못했다. 무능력한 아버지로 인해 우리 집안은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었다. 아버지는 수시로 방바닥에 하루를 엎었다. 누나와 나는 골방에 깡통처럼 찌그러져 그런 아버지를 저주했다. 그 저주가 효력을 발생했던 것일까? 오래지 않아 아버지는 가족들을 피해 무덤 속으로 도망쳤다. 아버지의 죽음에도 슬퍼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그 날 나는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술병처럼 나를 쏟았다. 가족에게조차 사랑 한번 받지 못한 아버지가 너무 불쌍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자 희한하게도 우리 집안에 봄이 왔다. 어머니는 바느질 품을 팔아 어렵게 우리들을 먹여살렸지만, 더 이상 우리 집은 힘들지 않았다.
나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가정은 지상의 작은 천국이다.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다. 가난하지만,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위해 걱정하고 염려하여 더 성실해지고, 더 신뢰하게 된다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나는 ‘기차가 떠나신다’는 짧은 동시를 통해 어려운 형편이지만, 서로를 염려하고 걱정하고 위해주는 진정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내 어린 시절의 어머니도 역을 막 떠나는 기차처럼 코를 고신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가족을 무사히 목적지에 내려놓으신 우리 어머니처럼 내 시 속의 젊은 어머니 또한 어린 자식들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 것임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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