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당선작

2007 현대시학 신인상 당선작 /우화등선

자크라캉 2008. 2. 11. 10:39

 

사진<神仙道>님의 카페에서

 

 

[2007 현대시학 신인상 당선작]

화등선 외 3편 / 김영식

 

빗방울이 베란다 유리창을 붙들고 있다

간밤 어둠이 불륜처럼 슬어놓은 알들

둥근 발톱으로 수직의 절벽 움켜쥐고 있다

염낭거미가 잎 말아 만든 두루주머니 같다

실을 토해 제 몸에 감옥을 씌운 누에고치처럼

오글오글 모여앉아 변태를 기다리는 것들

점점이 찍어놓은 마침표 같은 그것들이 가슴에 조용히

날개와 몸통, 여윈 발을 묻고 있는 걸 본다

실핏줄 사이로 가늘게 들숨 날숨도 쉬면서

젖은 눈알을 염주처럼 굴리고 있다

밤새 추위에 떨던 입술 오물거리며 조금씩

빛알갱일 환약처럼 삼키고 있는,

눈가에 검은 눈썹달을 매단, 이글루 같은 입자들은

바람이 불면 꿈틀!

천 길 낭떠러지 아랠 굽어보기도 한다

수천의 꼼지락거림이 그린 한 장의 회화繪畵

이윽고 구름 사이로 태양마차가 내려오자

겨드랑이 밑 날개를 꺼내 일제히

어린 고양이 털 같은 공길 가르며

물나비떼가 공중의 산맥으로 훨훨 날아오르는 것이었다

내 죽지에서 자욱이 날갯짓소리가 들려왔다

 

 

 / 김영식

 

 

냄비 속 물이 끓는다

이 순간을 오랫! 동안 기다려왔다는 듯

흰 챠도르 두른 물의 분자들이 비등점까지 솟구쳐 오른다

물 갈피에 갇혀 있던 막막한 기다림들이 일제히

둥근 수면을 떠밀며 돌기하고

이제 막 옹알이를 시작하는 꽃몽오리들

푸르르푸르 새의 부리처럼 지저귄다

어둠 속을 고요하게 흐르기만 하던,

샘에 앉아 기껏 허공의 얼굴이나 비추던 그녀는

얼마나 목이 타는 말을

제 뼈 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일까

간절한 것들은 모두 꽃이 된다고 물은 지금

최초의 설렘인 듯 최후의 결심인 듯

전심전력으로 피어나고 있다 몸속에

뿌리, 줄기를 감추고 있는 저 구름가계의 족속들은

더러는 수증기가 되어 천정까지 발돋움 한다

무수한 골짜기와 봉우리가 일어섰단 스러지고

흰 머리칼 쓸어 넘기며

젖은 입술 흔들어대며

가스레인지 위로 화르르 끓는 절정을 토해내는 그녀의,

뜨거운 혓바닥이 밀어 올리는 수천의 아우성들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리는 무뇌아처럼 지금

세상에서 가장 짧은 생을 가진

슬픔이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다

 

 

 

 

 / 김영식

 

 

시장 바닥에 노랗게 서서 누군! 가를 향해

고래고래 소릴 지르는 여자, 의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격렬한 파동은 짧고 빠른 혀를 가졌다

천둥처럼 터지는 격음의 혓바닥들이

지느러밀 파닥거리며 좁은 골목을 헤엄친다

제 설움에 컥컥 목이 메다가

물간 생선 좌판 위로 거칠게 뿜어대는 시퍼런 적의

무엇이 또 혼자 사는 늙은 여자의 슬픔을 요동치게 했는가

향유고래 같은 여자의 숨구멍에서 솟구쳐 나온 울분들이

포목점이며 참기름집 처마를 쥐고 흔드는 동안

사람들은 소용돌이치는 분노를 무심히 바라볼 뿐,

몸 밖으로 뛰쳐나온 수만 개 말들이 수만 개

눈 부릅뜨며 집어삼킬 대상을 탐색한다 비칠비칠

애먼 시비의 가시권 밖으로 물러서는 사람들

을 집요하게 좇아가 어깨를 붙잡는 혀

삿대질하는 손끝에서 공기들은 하얗게 질린다

검은 비닐봉지를 흔들며 시장골목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억울한 허공의 멱살만 움켜잡던 말이

동굴 같은 입속으로 캄캄하게 삼켜질 때까지

질펀한 자전自轉을 스스로 멈출 때까지 시장은

잠시 오래 침묵한다 길바닥에 마구 흩어진 회오리를

주섬주섬 거둬들인 여자가 다시 좌판 앞에 쪼그려 앉는다

그래도 울분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 처 수거하지 않은 몇 개의 혀가

지나가는 이들의 발뒤꿈치를 문다, 덥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