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해대27기동기회>님들의 카페에서
[세계의 문학 제 1회 신인상 당선작]
큰파란바람의 저녁 외 1편 / 김지녀
바람은 쉽게 땅에 발을 내려놓지 못하고 달아난다
강을 지나 일년 내내 눈 쌓인 계곡을 지나
그러나 간단하게 뭉쳐지는 구름들 사이로
무섭게 직진하고 있는 태양의 기둥을 지나
벽을 뚫고
천 년 전에 만났다 헤어진 사람의 눈동자를 핥으며
지구를 만 년쯤 돌고 있는 바람이 이마에 와 닿을 때
국경을 넘어온 얼굴처럼 얼어 있는 저녁을 바라볼 때
나는 기둥, 이라는 제목의 나무
활엽에서 침엽으로 옮아가는 숲의 그늘
절벽 위에 서 있으면 어느 고원을 떠돌다 사라진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돈다
입술 튼 바람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전진하거나 융기하는
대륙의 저 끝에서 잠시 날개를 접고
녹아내리는 얼음을 밟으며 며칠 밤낮을 걸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었을 것이다
몇 달이 지나도 눈이나 비가 오는 숲에서
알을 품은 적 있는 둥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는 나무 잎사귀가 다 떨어진 저녁
바닥에 누워 영원히 눈 감는 자의 호흡은
처음 비행에 나서는 새의 눈빛처럼 새까만 것이어서
수없이 흔들리며 가라앉아 간다
입 벌린 채 마른 강을 건너가듯이
나는 갈증을 느끼며 파랗게 변해가는 피부 속에
활공하는 바람의 말들을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 바람이 데리고 온 먼 곳의 먼지들은 낮게 휘돌다 단단해진다
사진<임정규플래닛 스토리.>님의 프래닛에서
칙칙과 폭폭 그리고 망상 / 김지녀
나를 위해 노래해줘 뱃속에서 잠자는 망상을 깨워줘 기차는 또 달리지 같은 레일 위에서 칙칙,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지 칸과 칸 사이를 폭폭 질주하지 몽유병을 앓는 것처럼
달려야해 용기가 필요해 칙칙한 노래는 듣기 싫어 나를 폭폭, 갉아먹는 망상은 희망이야 터널을 뚫는 힘이야 역마다 잘 가꿔진 꽃나무가 꽃을 버리기 위해 흔들려
한 병의 소주와 갈기갈기 찢어진 오징어 다리 사이에서, 내 이름은 너무 고유해서 고유할 뿐 그렇지만 칙칙,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네 내 노래는 오래 전부터 무감각해 여긴 어디야? 이곳은. 폭폭,
누구나 가슴속에 새장은 있다네 밤마다 새장을 칙칙, 쪼아대는 새를 키우고 있다네 등에는 화살에 찔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 살짝만 건드려도 비명이 폭폭, 나올지 모르지
아까부터 머리가 아파 나를 위해 노래해줘 흘러 다니는 의자를 위해 소주를 따라줘 난 오징어의 눈을 찾을게 사람들의 수다를 치료해줘 그리고 달려줘
'신춘문예당선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2년 경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마지막 봄날에 대한 변명/ 이영옥 (0) | 2008.01.31 |
---|---|
[2008 평화신문 신춘문예당선작]-좀들이쌀/김남수 (0) | 2008.01.25 |
가을에 대한 짧은 소견 / 이상미 (0) | 2008.01.09 |
[2008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족 /조성식 (0) | 2008.01.09 |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책장애벌레 /이종섶 (0) | 2008.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