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가을에 대한 짧은 소견 / 이상미

자크라캉 2008. 1. 9. 16:55

 

                               사진<구주머리 청정무구 오미산장>님의 플래닛에서

 

[창조문학신문 2008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을에 대한 짧은 소견 / 이상미

진찰실 한켠에선
눈 먼 소국이 그녀를 읽는다

하루 분량의 햇살을 다 털어먹어도
그만그만한
그녀의 증세를 점검한다

입 짧은 가을

시간은 어느 새
눈에 보이지 않는 인부들을 불러 내
들판을 시공하고

거둬 낸 풍경 몇 점만이
손잡이 나간
달력 속으로 들어온다

잠깐,
공복 중인 우주와 눈 마주치는

설명서에도 없는
고요 한 상
가득 받고 서 있는 오후

차도가 없는 그녀의 병은
늦게 퇴근하는 가을 탓이다

 


<심사평>  - 박인과 문학평론가

 

위장병을 앓고 있는 엇박자 문법으로 찢겨진 공복의 우주를 스캔


이상미의 시 ‘가을에 대한 짧은 소견’은 우선 함축미가 있다. 또한 연을 잘라내어 다루거나 의도된 문법의 유희, 시어의 유실(4연, 6연) 등에 의한 그의 엇박자 문법이 시의 골격을 튼튼하게 받쳐주고 있다.

‘눈 먼 소국이 그녀를 읽는’ 행위는 이 시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눈 먼’ 시어의 상태가 첫 연에 나오고 4연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인부들’이 나오고 ‘눈 마주치는’ 시어가 6연에 나온다. 6연에 또한 ‘공복’이란 시어가 틀어박혀 있다. 이 시어 ‘공복’은 ‘입 짧은 가을’의 시어와 함께 위장병을 유발한다. 이 위장병증을 ‘눈 먼 소국’이 스캔한다.

이 시에서의 가을의 이미지는 비워짐이다. 쓰리고 쓰린 위경련이 일어나도록 시간의 위장을 비우는 것이다. 즉 그것은 ‘입 짧은 가을’, ‘거둬 낸 풍경’, ‘손잡이 나간 달력’, ‘공복 중인 우주’, ‘고요’ 등의 시어들이 다른 시어인 ‘들판’에 텅텅 비워진 고독의 이미지를 걸어놓는 것이다. 그 ‘거둬 낸 풍경 몇 점’마저 ‘손잡이 나간 달력 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만다. 철저한 비워짐이다. 이젠 남아있는 풍경이라곤 아예 없다. 그래서 ‘공복 중인 우주’의 형상이 스크랩된다. 사실 첫 연에서 이미 ‘눈 먼 소국’의 시어를 제시함으로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적의 상태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그렇게 공복으로 철저히 비워진 시어들의 위장에 이젠 ‘고요’만이 남는다. 그 ‘고요’가 한 상 가득 가을의 오후에 담겨있다고 진찰하여 소견은 그녀의 위장병은 ‘늦게 퇴근하는 가을’ 때문이라고 한다. 비워질 때 비워지고 담길 때 담겨야 하는 것이 튼튼한 시간의 위장을 위한 조건이지만 가을이 늦게 퇴근하므로 위장이 비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위장병은 차도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보이지 않는 인부들’을 불러내 가을걷이를 함으로써 그 비워짐의 고독은 작자의 의도된 위장병임을 ‘눈 먼 소국’의 하얀 조리개로 채집한다.

그것은 가을의 정취를 가득 채우기 위해 아마 가을을 더 연모하고 있는 작자의 심상이며 ‘공복 중인 우주와 눈 마주치’면서 자신의 비워진 고독의 위장에 동병상련의 기쁨을 전달한다. 자연도 비워지고 자신도 비워지는 우주의 섭리를 따라가며 ‘입 짧은 가을’을 진단하는 것이다.

역시 누런 그리움의 병을 앓는 가을에 대한 소견서에는 ‘공복 중인 우주’가 있다. 가을이 비워짐의 행위에는 풍요로운 들녘의 상태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채워짐의 행위에는 비워짐의 상태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가을에 대한 짧은 소견’은 그래서 비워지기 위한 시가 아니고 사실은 비워져서 채워지기 위한 소망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워짐의 껍질을 벗겨내면 채워진 풍요와 사랑의 알맹이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위장병이 차도가 없는 것은 ‘늦게 가는 가을’ 탓이 아니라, 그녀의 다시 채워지기 위한 욕심이 과도해서인 것이다. 그 욕망의 과식으로 해마다 가을이면 그녀에겐 위장병이 재발하게 하는 것이다. 발병의 모든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데 자연의 물상들을 끌어들여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것이 시다. 그럼으로 해서 작자의 위장병은 우주의 질서도 파괴하며 ‘공복’의 상태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녀의 시의 틀을 아마도 교과서적으로 논한다면 연 구별을 달리 하라고 혹자는 주문할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이 작품에 있어서 연 구별의 묘미는 템포에 있다. 그 템포를 빠르게 하거나 느리게 하면서 시어의 고무줄을 적당히 늘리고 있다. 이 적당히 늘림의 행위는 이 시의 그릇에 가을의 정서가 가득 담기게 하는 데 있다. 즉 시의 뼈 4연과 5연 사이, 6연과 7연 사이가 골절되어 형성된 시의 늪, 그 시의 찢겨진 공간 속으로 ‘공복’ 중인 독자의 상상력이 들어앉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독자의 상상력에 의한 무수한 그리움의 꽃잎들이 그 갈라진 시의 블랙홀로 빠져들어 담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에서 연 구별로 인하여 생긴 ‘공복’의 공간은 시어의 함축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되며 그녀의 위장병을 치료하게 되는 ‘한켠’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제 이상미 시인의 꼼꼼한 등장으로 우리 한국문단에서 활기를 찾게 될 것이다. 그녀가 처방하는 시의 한켠의 공간이 ‘눈 먼 소국’으로 우리를 읽게 되면 우리는 여지없이 또 다시 그녀에 의해 사랑의 위장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 심사위원 박인과 문학평론가 -

 

<당선소감>


― 나를 믿어 준 가족과 선배님들, 구리문협식구들께 영광을

늦은 시간에 당선소식을 들었습니다.
추운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지독스러울 정도로 고집스럽게 살아온 내 모습을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가장 행복한 삶을 탐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길 위에 또 다른 길이 있다는 것과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착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 억 년째 이 빈 겨울을 지키는 나목들을 보며
정통성 있는 시를 추구하며 정진할 것을 다시 약속해봅니다.
밤샘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며 늘 걱정하던 나의 가족과
끊임없이 격려해준 지인들, 나의 모태인 구리문협 식구들,
그리고 하나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우주를 바라보듯 깊이 있게 읽어주신 심사위원님과,
신춘문예의 한 획을 그으신 창조문학신문사에 감사드리며
더욱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