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문화일보 신춘문예-시>
하모니카 부는 오빠 / 문정
▲ 일러스트 = 난 나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 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발목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주었지요, 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 캄퐁참, 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나는 지명에 대해,
오빠의 등에 삐뚤빼뚤 눈초리와 입술들을
붙여놓은 담장 안쪽 사람들은 모르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처럼
나를 훅 뚫고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죠
검은 줄무늬 교복치마가 펄렁, 하고 젖혀지는 것도
영원히 나 혼자만 알죠
하모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이
밤이면 우리 집 평상 위에 뜨죠
오빠가 공장에서 철야작업 하는 동안
별들도 나처럼 자지 않고 그냥 철야를 하죠
<시 당선소감>
몇년 동안 안고 산 詩의 그늘 걷혀 |
짙은 안개 속으로 출근을 합니다. 햇살은 아직 산속에서 종종거리고 있습니다. 안개에 어둠이 잔뜩 물려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아 갑갑하기도 무섭기도 합니다. 나는 앞차의 엉덩이에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안개 속으로 점점 깊숙이 들어갑니다. 안개가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습니다.
3교시 수업 끝내고 쉬는 시간 불현듯 전화를 받습니다. 사방의 안개가 걷힙니다 몇 년 동안 꼭 안고 살아온 시의 그늘도 걷힙니다. 나는 벌판에 전신주처럼 서 있습니다. 이곳저곳으로 열심히 당선소식을 퍼 나릅니다. 흥성거리는 햇살이 벌판에 가득 차올라 있습니다. 금방 사연이 바짝 말라버립니다. 나는 홀로 두리번두리번, 꼼짝없이 벌판에 붙박여 있습니다. 알알이 드러난 내 몸뚱이를 내려다봅니다. 부끄럽습니다. 다시 어딘가로 숨고 싶습니다. 내일이면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 내 몸뚱이 가려줄 어둠 한 폭 정도는 여유가 있겠지요. 먼저 부족한 시를 선뜻 뽑아, 시의 꽁무니에 불을 붙여주신 오세영 선생님, 정호승 선생님 고맙습니다. 허락도 없이 시의 소재로 차용한 이 땅의 그늘 깊은 사람들께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땅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시를 채찍질해주던 여러 스승들과 친구들에게도, 고집불통 글쟁이 남편 때문에 내내 마음에 바람만 안고 살아가는 아내에게도, 올망졸망 예쁘고 순결한 내 어린 눈망울들에게도, 고마움 한 구절 이렇게 뽑아 올립니다. ▲본명 문정희 ▲1961년 전북 진안군 백운면 출생 ▲전북대 국문과 ▲전주 우석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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