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che 게바라 죽음 앞에선 인간이었다"

자크라캉 2007. 10. 16. 10:59

 

 

 

 

 

 

 

 

 

 

 

 

 

"che 게바라 죽음 앞에선 인간이었다"

 

 

체 게바라로 더욱 잘 알려진 에르네스토 게바라(ERNESTO GUEVARA ; 1928-67)는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지도자이자 혁명이론가로서 1960년대의 좌익급진주의자들의 영웅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로사리오에서 중산충 가정 출신으로 1953년에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학(University of Buenos Aires)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오직 혁명만이 라틴 아메리카의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1954년에 멕시코로 가서 그곳에 망명하고 있던 쿠바의 혁명지도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와 합류하였다. 1950년대 후반에는 카스트로의 게릴라전쟁을 도와 마침내 쿠바의 독재자 바띠스따(Fulgencio Batista)를 축출하는데 성공한다.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후에는 쿠바의 산업부 장관(1961-1964)을 역임하였다. 제3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에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카스트로 정권의 反美-親共 노선을 열렬히 옹호하였다. 게바라는 게릴라전쟁에 관한 두권의 책을 썼는데, 여기에서 농민이 주동이 되는 혁명운동이 후진국의 살길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1965년 쿠바에서 사라졌다가 그 이듬해 볼리비아의 반군 지도자로 나타났다가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붙잡혀 1967년 10월 9일 발레그란데(Vallegrande) 근처에서 총살되었다

 

"che 게바라 죽음 앞에선 인간이었다"

[동아일보]

오늘날 혁명과 저항의 아이콘이 된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 9일로 게바라 사망 40주기를 맞았다.

의사였던 그는 메스 대신 총을 들고 혁명전선에 뛰어들어 쿠바혁명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쿠바 산업부 장관직을 버리고 남미 볼리비아에서 게릴라 활동을 벌이다 사살 당했다. 당시 나이 39세였다.

게바라 사망 40주기를 기념해 그가 숨을 거둔 볼리비아의 소도시 라이게라와 1997년 발견된 그의 시신이 안치된 쿠바 산타클라라 등에선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벌어질 예정이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도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게바라 체포 작전을 주도한 볼리비아 정부군의 가리 프라도 예비역 장군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1967년 10월 8일 오후 3시경 포위망을 좁혀 가자 홀로 있던 게바라가 ‘쏘지 마라, 내가 체(Che·친구를 부르는 스페인어)다’라며 순순히 투항했다”고 증언했다.

현장에 있던 베르나르디노 우안카 하사는 게바라가 “죽는 것보다 살아 있는 것이 낫다”는 말도 했다고 밝혔다. 강철의 혁명가 게바라도 죽는 순간에는 ‘영웅’이기보다는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무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동료들과 함께 있던 게바라가 붙잡히지 않았을 것”이라고 종종 말해 왔다. 게바라는 체포된 다음 날 9발의 총알을 맞고 사망했고 신원 확인을 위해 양 손이 잘린 뒤 인근 비행장에 매장됐다.

게바라의 말년 게릴라 활동에 대해 쿠바 정부는 그의 행적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지만 미국과 당시 남미 군사정부는 그의 움직임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다.

남미 군사정부 간에 오간 1966년 10월 3일자 비밀보고서에는 “게바라가 브라질 콜룸바에서 오스카 페레이라라는 가명을 쓰고 있으며 수염을 길렀다”고 돼 있다고 이를 입수한 AFP통신은 전했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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