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 <외대학보>

자크라캉 2006. 7. 14. 14:24

 

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

 

 

'체 게바라’는 우연하게 자신이 추구했던 삶과 달리 요즈음 들어 티셔츠나 상품화된 물건 속에 그림으로 마주하게 한다. 그의 말은 진지하기 보다 상업적으로 쓰이는 이 기이한 현상들. 이익 앞에 발광하는 사람들은 그의 여정을 쫓아서 말하기보다 그가 가진 결과적인 ‘혁명’이라는 단어에 더 집착을 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가 그를 평가함에 있어 겉모습만 동경하지 실제 행동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 작은 글이 ‘체 게바라’의 잘못된 평가와 이해를 바로 잡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체게바라 평전생소한 사람을 마주하는 것처럼 어색한 일이 없다. 특히 이국적이고 딱딱한 말투가 느껴지는 ‘체 게바라 평전’을 보는 순간, 이 낯선 만남에 대해 한참을 방황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냄새가 물씬 젖어오는 이 책의 어투는 프랑스 기자(장 코르미에)의 어휘력보다 더 우위를 점유하고 있어 더욱더 수수께끼의 그림자, 문화의 이질감이 짙게 드리운다.

하지만 어느새 ‘게바라’라는 인물에 대해 몰입하고, 그의 여정과 함께 함을 우리는 몇 장을 넘기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한 영화감독은 이 책을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가지고 간다고 했다. ‘게바라’의 게릴라 이미지가 자신의 영화 만들기와 비슷하다고 하면서…‘게바라’는 익히 세계적으로 알려진 게릴라 전술의 대가이다. 그는 게릴라가 되어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혁명을 이끌었으며, 게릴라 전술에 관한 몇 권의 책도 썼다. 인생의 기나긴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게릴라 이야기는 다른 사람이 듣기에도 친숙한 느낌과 값진 간접적 경험으로 새겨진다. 평전이라 다소 영웅적인 형식과 게릴라라는 이름표는 그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남는다.

우리나라처럼 다소 보수적인 성향을 많이 드러내는 문화권에서 ‘게바라’가 거론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뻔한 이치이다. 하지만 ‘게바라’는 우리가 생각하듯, 혹은 겉으로 드러난 그의 행적만으로 평가받기에는 너무나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연예인 이야기와 우스운 개그가 난무하는 사회 속에서 ‘게바라’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다. 잘 포장된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면서 그의 또 다른 도전이 死後(사후)에 진행된다. 그것 역시 게릴라가 아닐까.

여름 무렵, 꿈에 대한 회의와 삶의 지친 언덕에서 갈등하고 있을 때, ‘게바라’의 이야기는 筆者(필자)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긴 방황을 정리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젊음을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산 ‘게바라’, 아르헨티니아 출생으로 의사가 꿈이었던 그는 미국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가난한 남미대륙을 보고자란다. 결국 촉망받는 의사가 되지만, 그의 마음은 늘 편치 못했다. 굶주리며 병들어 가는 남미대륙의 많은 사람들, 의사라는 직업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제한적인 영역을 갈등해온 ‘게바라’는 문제의 원인을 찾는다. 미국의 식민지화가 된 남미대륙(권력가와 자본가의 착취가 활발했던 시기), 그의 결론은 명확하고 분명한 현실이었다. 이미 당시 민중들 사이에서 공감대는 형성되었고, 대변인을 찾고 있었던 많은 남미인들 앞에 ‘게바라’는 당당한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하지만 거대한 자본주의와 권력의 봉우리에 놓여있던 미국과 허수아비 남미국가 정부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가진 많은 경험과 의욕적인 청년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을 때, 그 둘의 운명은 혁명과 같이 한다. 이상적인 국가 건설의 본보기를 쿠바에서 찾고자 했던 청년들이 보트에 스무명 남짓(그 안에 ‘게바라’가 있었다)이 타고 쿠바로 향하였다. 그날 이후 미국의 원조를 받아 자신의 이익만을 차리고 있던 쿠바 정부를 몰아내고 진정한 민중적인 국가 건설을 위해 혁명을 가맹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그의 별명 ‘체’와 게릴라 전술은, ‘게바라’의 이미지로 남게 된다. 마치 홍길동 이야기처럼 진행되는 이 실화는 결국 쿠바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게바라’가 단지 혁명에 만족하고, 자신이 가진 지적 능력과 우월성에 합리화를 했다면, 그의 평전은 쓰레기통 속에 잠자는 휴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는 언제나 성실한 사람으로 민중으로 남기를 원했으며, 아픈 이들과 함께 하는 의사로 남기를 바랬던 것이다. 쿠바의 중요 직책을 맡으면서도 그는 일정 시간을 사탕수수 밭에서 농사일을 도왔고, 부를 축적하기 거부하고 공무원 월급만을 받기를 고집했으며, 밤새워 책을 읽던 독서광의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 혁명 중에 그의 잠은 새벽에 이루어지곤 했는데, 그것은 책을 읽기 위함이었다. 다양한 독서는 그가 가진 경험과 어우러져 샤르트르나 당대의 지식인들과 대화에서 그는 언제나 당당하게 의견을 토론할 수 있었다. 성격이 강직하고 맑스의 책을 읽기 좋아했으나, 맑스처럼 행동하기를 거부했던 ‘게바라’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인이나 혁명가와는 사뭇 다르다. 성실하고 정직한 생활과 변치 않는 젊음으로 그는, 쿠바의 중요 직책을 사퇴하고 아프리카와 다시 남미로 혁명군을 조직해 긴 싸움을 준비한다. 모든 인간들이 자본을 떠나 행복하기를 바랬던 ‘게바라’는 생각 속에 머물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고, 볼리비아에서 죽음을 당할 때까지 자신이 이십대에 가졌던 꿈을 버리지 않았다.

프랑스 기자의 정갈한 문체로 이어지는 그의 일기와 글이 전개되는 평전은 우리에게 새로운 감동을 준다. 그것은 정지하는 일시적인 충동이라기보다 멀리 퍼져 가는 동심원과 같다. 맑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는 사상에 맹목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가장 중대한 문제는 사상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었다. 바로 인간, 그 따뜻한 사람이 모인 공간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필수 불가결한 흐름으로 가는 현장에서 마냥 보고 있는 사람 중에 ‘게바라’도 서 있었지만, 그는 그 물결의 방향을 미비한 힘으로 막아보려고 한 것이다. 비록 게릴라라는 폭력적인 방법을 모태로 했지만(그는 포로를 죽이지 않았다), 그러한 방법이외에 다른 결정이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지는 역사가 잘 말해준다. 아직도 남미의 국가는 미국의 지배력 안에 놓여 있다. 물론 멀리 떨어진 한국도 예외는 아닐 수 없다. 혹은 넓게 생각하면, ‘게바라’처럼, 자본주의 안에 갇혀진 ‘나-우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상품화 속에서 소비하는 모습, 경쟁의 대열에서 쏟아지는 문제의 해결을 이기적으로 풀어야 하는 자신, 대학 안의 자신을 발견할 때 사뭇 그를 떠올린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 범하기 쉬운 오류는 현 쿠바 정부에 포함된 ‘게바라’를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가 펼친 무대는 쿠바가 아니었음을, 그의 인생이 쿠바나 게릴라에만 국한되지 아니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체 게바라’평전이 어렵다면, 그것은 문화적 차이이기 보다 삶에 대해 진지한 고찰이 없다고 믿는 편이 낫다. 혹은 아직도 이 책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삶에 대해 혼자만이 영위하려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일 것이다. 평생토록 편안한 잠자리를 거부하며, 의사로써 사상가로써 농부로써 살고자 했던 ‘게바라’, 흙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모두가 공평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은 그의 삶에 갈채를 보낸다.

비록 타국에서 벌어진 어느 사람의 일대기이지만, 시대를 함께 하는 사람은 가슴 깊이 이해하고 감동할 것이다. 모두가 그와 같은 삶을 걸어갈 수 없다. 그 역시 그러기를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작은 전투를 경험하고 있는 게릴라일지도 모른다.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자칫 안일하게 생각하는 지식인들에게 ‘게바라’는 고흐의 그림처럼 강렬한 빛깔을 당신에게 줄지 모른다. 짧은 지면에서 ‘게바라’의 여정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이 땅을 살아가는 당신이라면 ‘체 게바라’를 읽고 그의 생각을 기억하기 바란다.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