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영 근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김수영 시 「절망」 부분
지난 늦가을이었다. 김수영의 시비가 있는 도봉산에 올랐었다. 생울타리 안에 시비가 서 있었고, 그 곁에 시들어가는 가을꽃 몇 묶음이 스산하게 나를 가리키고 있었고, 바람에 나뭇잎들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다. 혼자였고, 마음이 적막해서 소주 한 잔도 마실 수 없었다. 그렇다, 이런 시대에 도대체 무슨 뜻을 구하자고 먼 길을 챙겨 그를 찾았더란 말인가. 주변에 나를 아는 누군가가 있어 내 모습을 본다면, 더하여 묘비석에 새겨진 시를 더듬어 읽는 내 추레한 행색을 본다면 무슨 말을 지어 입에 올릴 것인가. 술자리의 폭소거리쯤으로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었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 「그 방을 생각하며」 부문
지금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 무렵 나는 한국시의 중심부가 펼치고 있는 어떤 풍경들을 우울하게 되새기고 있었다. 자연, 또는 '생명'으로의 도저한 경사, 번역된 외국시론과 난해의 과잉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그것들은, 물론 그것 자체만을 떼어놓고 바라본다면 그 나름의 문학적 의미를 갖고 있을 터이다. 그리고 혁명이 헛소리가 되어버린 왜소한 현실에서 한국시가 어렵게 찾은 협로인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 연대와의 단절과 새로운 세계로의 이월은 문학사의 생명이 아닌가. 그러나 내 시야가 이지러진 탓인가. 나는 한국 시단의 주류 현상이 된 생명시류(詩流)의 긍정적 세계관과 사적 언어의 난해한 실험의 태도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들의 시에서 내가 읽은 것은 부조리한 세계 현실과의 은밀한 타협의 태도였으며, 김현이 말한 바 정신이 되지 못한 기법과 수사의 무책임성이었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
반성적 사유와 고통이 부재한 자리에 남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삶의 비루함과 정신의 속물적 태도일 것이다. 일정하게 중산층화된 생활의 경제적 토대와 어떤 고리를 맺고 있을 그 비루함을 나는 주목하거니와, 거기서 내가 듣는 것은 이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자본의 목소리이다. 그 정신과 표현에 있어서 자본의 '그린 캠페인'과 상당수의 자연 예찬시의 유사한 측면을 말한다면 무리한 표현일 것인가. 정신의 속물적 태도와 관련하여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비판의 들러리가 되었거나 거의 보이지 않는 비평의 모습이다. 당연히 그것과 함께 말해야 할 것은 그와 같은 비평 앞에서 얌전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시인들의 모습일 것이다. 김수영이 말한 매문, 또는 매명은 그러한 태도와 과연 얼마나 먼 거리에 있는 것인지 나는 묻고, 또 묻는다.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 「절망」 부분
해가 산 너머로 떨어지는데 김수영의 시비는 참으로 고독하게 보였다. 이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기념비. 막 돌아서서 산길을 내려오려 할 때 문득 달려드는 한 생각! 바로 그 고독한 자리에서 구원의 바람이 불어 올 것이라는 한 깨우침! 시의 아픈 몸이 내지르는 헛소리가 우리의 굳은 정신을 뚫고 어떤 기적이 되는 것처럼.
* 박영근 : 시인. 1958년생.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 『지금도 그 별은 눈뜨는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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