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수필

誠實한 恩考와 誠實한 態度 / 田 淑 憘

자크라캉 2007. 7. 2. 17:34

19. 實한 恩考와 誠實한 態度 /  田 淑 憘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한 작법이라는, 논문 비슷한 것을 쓰기 위해 나는 꽤 오래 고민했었다. 왜 그런고. 하니 내가 쓰는 수필이란 어떤 규칙이나 법칙이나 테두리에 의해 쓰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남에게 공개하고 발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쓰는 수필이 아무렇게나 규범 없이 즉흥적으로 써 던지는 무책임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수필을 쓰기 위해 때로는 일 주일도, 또 한 달도 고민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명작을 쓰는 것도 아닌데 쓴다는 일의 과정은 다른 어떤 장르의 문학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머리 속에 떠올리고, 가슴으로 덮은 다음 적절한 언어를 골라 창조해 내기까지 무한한 고뇌와 망설임과 노력을 기울이듯 수필 쓰는 이들의 과정 또한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나는 나의 수필작법을 이야기한다. 는 의미에서 몇 마디 부언해야만 할 것 같다. 한 편의 수필을 쓰기 위해 나는 점점 더, 얼마나 마음속에 한 주제를 안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때로는 길을 걸으면서, 또 차를 타고 달리면서, 더욱 선명하게는 새벽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주로 무엇을 어떻게 쓸까 생각한다. 오랜 이런 과정을 거쳐 하나의 테마가 떠오르면 나는 주로 아침시간을 택해 써내려 간다. 내 수필의 길이는 대개 200 자 원고지 10 매에서 15매 내지 20 매가 고작이다. 하루에 다 쓰지 못하고 이틀, 사흘 걸릴 때가 있다. 이것은 분망한 내 생활 탓도 있겠지만 대수롭지 않은 원고도 나는 한 두 번은 꼭 다시 추고하고 고쳐 나가기 때문이다. 한 번 써놓은 원고를 고친다는 것은 밤새워 지어 놓은 저고리나 두루마기를 뜯어 다시 바느질하는 이상의 고난이 따른다. 그러기에 똑바른 판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한 편의 글이 써진 다음에는 필자에게서 떠나 독자들의 것이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한 편에 담긴 사상과 철학과 인생을 보는 눈, 그리고 재치 있는 표현력 등을 엄밀하게 재검토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청탁일자에 몰려 바쁘게 써 보낸 원고를 잊어버리고 있다가 몇 달 후에 누군가 읽었다는 인사를 받을 때는 부끄러워지고 독자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괴롭히게 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 자신이 글을 쓴다는 사명에 대한 엄숙함과 책임감을 다시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수필작법에 있어서의 하나의 규범을 들라면 그것은 성실한 사고와, 성실한 태도라고 말하고 싶다. 그 성실의 온상에서 신선하고 맛좋은 포도주가 익어 나오리라고 믿는다.

오늘날 한국 독서가 인구 중 시 나 소설을 전공하는 사람이외의 독자로서는 수필독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은 수필의 대중성을 말해 주는 동시에 그 중요함 또한 쓰는 이들이 생각해야 되리라고 믿는다. 대중성이 있으니 만큼 수필의 문학성이 약해지기 쉬운 우려도 있다.

그러므로 수필 작가들은 노력해 문학성이 높으면서 대중에게 읽혀지는 글을 써야 한다는 데 책임을 느껴야할 것이다

수필이란 제재의 다양성과 형식의 자유로 이루어지는 글일 동시에 작자의 개성이나 사고가 직선적으로 강하게 표출되는 것이어서 자칫하면 개인주변의 잡문이나 넋두리로 문학성을 잃기 쉬운 것이다.

몽테뉴 도 그의 <수상록>에서 [내 자신이 바로 내 책자의 재료이다]고 했다. 즉 수필은 인간자조의 가장 순수한 문학형식이며 동시에 문학으로서 의 심미감을 잃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들어 문단에는 수많은 수필가들이 등단하고 있다. 또 출판 불황에도 불구하고 수필집만은 많은 독자들을 가지고 잇다는 사실을 생각 할 때 수필가들은 책임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즉 그 수가 질을 격하시키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수필 작품의 질을 높여, 현재 독서가에 일고 있는 수필 붐과 동시에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확고한 위치를 정립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포올 발레리는 그의 시화에서 산문과 시를 [보행과 춤]으로 비유했다. 나 역시 항상 그런 생각으로 내 시상과 사색을 다듬어 수필이라는 산문으로 표현해 오고 있다.

요즈음에 내가 생각하는 것은 착상에서 표현에 이르기까지 안일에서 벗어나 좀더 깊이 생각하고 섬세하게 느끼고 또 철저히 자료를 조사한 다음 완전한 자신을 가지고 한 편의 글을 쓰는 데 임하고자 하는 생각이다.

또 한편 쓰는 사람은 남보다 많은 것을 느낄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즉 폭 넓은 지식이다. 이것은 독서에서만이 얻어지는 것이다.

많이 읽고 깊이 사색하고 넓게 통찰한 다음 성실한 언어구사로 써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