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수필

수필작법6./영감만으로 쓰는 글

자크라캉 2007. 7. 2. 16:58

수필작법6.

 

감만으로 쓰는 글  / 鄭 鳳 九

나의 수필작법?.......무슨 대단한 수필가랍시고 수필작법을 피력하랴.

노트 공개?.......유감스럽게도 나에게 노트가 없다.

에스키스 없는 화가 ㅡ 수 많은 영상을 오르지 綢膜속에 사진 찍어둘 뿐인 그의 스케치북은 항시 無垢하니 순백하다. 그래서 캠퍼스를 마주하는 그의 마음은 언제나 생소하고 허전하다. 따라서 그곳에 그려질 그림도 바람처럼 그를 스치고 간 잊혀진 의식의 유머이며 가슴으로 느끼는 아름다운 메아리이다.

대사 없는 연극배우 ㅡ 허망을 짓씹는 서글픈 배역을 甘受하는 그의 연기는 여백을 불사르는 권태로운 인생들에게, 눈물을 웃음으로 폭발케 해주려는 노력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의 수필은 하나의 염원일 뿐 作圖된 요지부동의 영역을 점유치 못한다. 굳이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나의 수필작법이며 수필신조이다.

원고지를 대하여 수필을 쓰고자 하는 作意나 수필을 써가는 제작과정, 또 수필을 생각하는 착상과정 그리고 그것을 작품화 하는 완성과정이 모두다 염원일 뿐이다.

그러면 염원이란 무엇인가? 모른다. 기실 염원자체도 부동의 것이 못되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내 수필의 정의는 여전히 파악되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자기의 분열을 내세운 키엘케골의 야누스 사상을 내 수필 속에서 모색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 한 얼굴로는 남을 대하여 쾌활한 웃음을 짓지만 또 한 얼굴로는 스스로 마음속에 눈물을 흘린다.

무대 위에선 어릿광대의 피에로는 웃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면서 자기 가슴속에는 슬픔을 깊이 간직해 둠으로 자기를 의식한다.

이를테면 나의 수필은 그와 같은 내 마음 안의 갈등을 해소하는 표현이기도 하고 위장하기도하다. 그러니까 그것은 화사하게 나를 분칠하기도 하고 바보처럼 자신을 노출하기도 한다.

수필을 쓰기위해 입맛을 잃을 정도라면 사람들은 웃으리라. 한편의 詩를 쓰기위해 수년동안을 깎고 다듬은 사람은 숭앙을 받아도, 한편의 수필을 쓰기에 달과 해가 바뀌었다고 자랑이 된 일은 듣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을 만드는 마음은 모두 일반이다. 정초에 입을 나들이 옷을 짓느라고 꼬박이 밤을 새우며 화로 불에 꽂아 놓은 인두를 뺐다 꽂았다 하는 정성스러운 여자의 마음을 내 수필작법이라고 말하리라.

하루에 세 차례씩 와이셔츠를 갈아입었다는 世紀의 댄디(dandy 멋쟁이)보들레르의 마음을 나는 이해한다. 우수(憂愁)에 지친 차가운 눈이 쓰게 웃는 雪白의 칼라, 그런 기분을 내 수필작법으로 삼고도 싶다.

나를 망각하고 나를 발견하는 시간, 그런 시간 속에서 나의 수필은 생각되는 것 같다.

내려야할 정거장을 지나쳤을 때, 쓴 웃음으로 되돌아가는 지나친 길이란 그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내가 수필을 생각하는 시간은 바로 그런 시간인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수필은 항상 내 곁에 있으면서 나를 잡아주지 않는다. 그것은 복잡한 큰길과 인파를 피하여 호젓한 뒷골목 길을 취하는 경우와 같다. 생판 처음 보는 낯선 길에서 막연히 목표를 정하고 마음만 초조할 때, 나는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미로에 들어선 양 불안하다. 그러나 생각지 않게 환희 트인 큰길을 만날 때 이 골목이 이렇게 빠졌던가 하는 비할 수 없는 쾌감, 내가 수필을 쓰며 느끼는 번뇌와 희열은 바로 그런 감정인지도 모를 일이다.

지구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자양이라고 하지만 나는 내 수필작법에 있어서의 질서를 커다란 자장의 원리로 비유하고 싶다. 내 수필세계라는 자력선 속에서 무수히 분산한 어휘의 분 자석을 완전히 N극과 S극으로 정돈시켜 자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때 나의 글은 비로소 수필이 되는 것이다. 내 글의 자성이 크면 클수록 나의 수필은 수필로서의 가치를 더하리라.

옛날에 짚신을 삼아서 장에 갖다 파는 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삼은 짚신이 늘 잘 팔리는 것을 부럽게 여겨 아들이 항상 그 비결을 물었으나 아버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임종이 닥친 날에야 황급하게 물어보는 아들에게 “털”하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 아버지는 죽었다던가? 짚신을 다듬을 때 “털”을 정성들여 잘라내란 말이었다는 애기다. 하찮은 짚신 만드는 법도 남도 아닌 아들에게 조차 전수하지 않으려한 장인의 근성이 엿보이거니와 실상 나는 내 수필 법에 있어 감추고 숨겨둘 거리도 없다.

그러나 그런대로 나의 수필작법은 나만의 것이기 때문에 또한 여기에 다 쓰지 못한 그 무엇이 있다.

왕년에 일본 문답을 떨친 개천용지조(芥川龍之助)는 절대로 자기의 초고(草稿)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에스키스 없는 화가모양, 노트도 작도도 없는 나의 수필작법을 나열하며 나의 마음은 어쩐지 미흡하기도 하고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