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문학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괴테

자크라캉 2006. 7. 10. 11:30
괴테/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인간의 끝없는 헤매임, 그 삶의 편력들

류수안


깊은 정적이 바다를 지배하네
미동도 없이 바다는 떠 있고
뱃사람은 괴로운 모습으로
둘레의 반반한 수면을 본다
어느 쪽에서도 불지 않는 바람!
지독한 죽음의 정적
그 무변대한 바다여
파도 한 조각 일지 않누나
―괴테의 시 「바다의 정적」 전문

신분을 숨긴 채 여행중인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광물도 아니면서 몇 세기를 흙 속에 묻혀 있던 인간의 뼈를 본다. 무른 것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단단한 것들만으로 다시 한번 지상에 모습을 나타낸 그 뼈의 완벽한 형태에 매혹당한다. 척추뼈로부터 시작되어 필연처럼 다음의 뼈를 낳으면서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그 뼈의 완벽한 형태는 괴테에게 인간의 육체에 대한 경이를 불러일으킨다. 이때의 놀라움은 곧 괴테로 하여금 시·공간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종속하는 것들과 사라지는 것에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괴테가 본 사라지는 것 혹은 종속하는 것은, 종속하기 위하여 또는 사라지기 위하여 끊임없이 확장과 수축을 하고 있는 것들이다. 도대체 저 안에 무엇이 있어 저러한 변화를 일으키는가.
한 송이의 꽃이 열매에 이르면 씨방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다시 한번 벌어진다.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는 괴테의 영혼의 반쪽이었던 쉴러의 죽음 이후 한동안 중단되었다가 「괴테와의 대화」를 남긴 에케르만의 종용에 의해 다시 시작된다. 괴테는 자신이 관찰했던 사라지는 것과 종속하는 것들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여기에 기록해 놓는다. 몇몇 등장 인물들의 이름만 같을 뿐 전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는 전혀 다른 이 이야기 속에, 그는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그들 개개인의 행로를 통해 철학, 예술, 지질학, 천문학 등에 대한 자신의 방대한 편력을 보여준다.
노년의 괴테에 의하여 이 소설이 처음 완성되었을 당시 「편력자의 마음의 성찰」을 포함한 전체 3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소설이 너무 짧다는 에케르만의 의견을 받아들여 괴테는 그동안 메모해 두었던 「마카리어의 문집」을 새로이 추가시켜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세계는 「수업시대」를 지나온 괴테, 소설 속의 빌헬름을 초대하여 다시 한번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잔칫상의 정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그를 향하여 몰려들고 있다. 잔치를 열어준 세계와 그 자리에 참석한 괴테 사이에서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기도 한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제1편
편력길에 오른 빌헬름은 험준한 산길이 계곡으로 향해 있는 바위 그늘에 앉아 있다.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그에게 펠릭스가 번쩍이는 돌을 들고 와 이름을 묻는다. 그러한 그들 앞으로 펠릭스만한 아이 둘과 갓난 아이를 품에 안은 일가족이 다가온다. 빌헬름은 이들의 모습이 그림 속에서 본 「이집트에로의 피난」과 흡사한 것에 놀란다. 이들의 초대를 받아 산정에 위치해 있는 교회에 도착한 빌헬름은 도둑떼의 습격으로 남편을 잃은 임신부와 결혼하여 살고 있는 성 요셉 가족의 이야기를 듣는다. ‘몬탄’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는 야르노와 재회한 빌헬름은 아들 펠릭스와 더불어 어떤 동굴을 탐사한다. 이곳에서 펠릭스는 잠겨 있는 돌 상자를 발견한다. 한 고장에서 삼일 이상을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탑의 규칙에 따라 어느 농장을 방문한 빌헬름 부자는 이곳에서 농장주의 딸이면서 자매인 헬실리어와 율리에테를 만난다. 자신의 실수로 행방불명된 소작인의 딸을 찾으려 사방을 헤매고 있는 레날도에 관해 알게 된다. 천문학자로 태양의 영향을 받고 있는 마카리어가 빌헬름을 찾아와 조카인 레날도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편지에 명시되어 있는 도시에 도착한 빌헬름은 이곳에서 레날도의 스승이기도 한 골동품 수집가를 만난다. 문제의 돌 상자를 맡기는 빌헬름에게 노인은 말한다. ‘이제부터 운명이 그 중심부로부터 어느 소녀를 발견할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갈 것이다. 당신의 운명은 겨울의 과수 나무와 같다.’

제2편
펠릭스와 함께 교육주에 도착하여 원장을 만난 빌헬름은 펠릭스를 이곳에 입학시킨다. 편력 도중 만났던 화가와 함께 어느 섬에서 있었던 모임에 참석한 빌헬름은 예술가들을 만나러 여행할 것이라는 로타리어의 소식을 담은 수도원장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말미에 수도원장은 빌헬름의 영혼이 이제 일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교육주의 감독으로부터 산제에 초대된 빌헬름은 먼저 와 있던 야르노와 상봉한다. 야르노와 화산 암석 산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난 빌헬름은 이제부터 살아 있는 인간 사회에로 눈을 돌리리라 마음먹는다. 결혼을 약속한 나탈리어에게는 익사한 소년에 관한 소식을, 수도원장에게는 의학을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양딸로 맞아들였던 미뇽의 고향인 이탈리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빌헬름은 교육주를 찾아가 몰라보게 성장해 있는 펠릭스와 만난다. 이어 소설은 예술, 식물, 광산학이 총망라된 「편력자의 마음의 성찰」로 이어진다.

제3편
탑의 대원들을 만나러 도표를 따라 어느 성에 도착한 빌헬름은 먼저 와 있던 레날도와 프리드리히를 만난다. 이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는 빌헬름 앞으로 헬실리어의 편지가 온다. 골동품상 노인의 죽음으로 돌 상자를 맡고 있으니 펠릭스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저녁 나절, 그동안의 체험을 발표하려 몰려든 대원들에게 빌헬름은 경이의 대상인 인간의 육체에 대해 말한다. 다음 차례인 레날도는 빌헬름에게 와서 ‘적중할 뇌우’처럼 다가오고 있는 기계문명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는 일기를 건네주며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이들 앞으로 수도원장을 비롯한 테레제, 나탈리어, 로타리어 등이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목표로 바다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이들의 뒤를 따라가려 탑의 대원들과 마카리어 등이 속속 강으로 모여 든다. 이들과 함께 강에 도착한 빌헬름은 내달리는 말과 함께 물에 내동댕이쳐지고 있는 펠릭스를 발견한다. 헬실리어가 그의 사랑을 거부하자 절망에 빠져 말을 몰았던 펠릭스는 근처에 있던 어부들에 의해 구출되어 모래 위에 눕혀진다. 빌헬름은 죽음 앞에 이르러 있는 아들의 혈관을 절개하여 펠릭스를 생명으로 되돌려 놓는다. 자신의 외투를 벗어 아들에게 덮어 주던 빌헬름은 처음으로 숭고한 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소설은 이 대목에 이르러 돌연 「편력자의 마음의 성찰」과 같은 형식의 마카리어의 문집의 내용들로 종결에 이른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 출간 이후 장장 30여 년간에 걸쳐 씌어진 소설 「편력시대」는 「파우스트」와 더불어 만년의 괴테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소설 중의 하나이다. 더불어 발표된 괴테의 모든 소설들 중 가장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 중 가장 큰 특징은 소설의 핵심이랄 수도 있을 일관된 줄거리와 주인공이 없다는 것이다. 전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은 분명 빌헬름 마이스터이다. 그러나 그는 등장 인물 전체가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을 이 소설의 인물들을 지면에 소개하고 그들을 연결시킬 뿐, 주인공은 아니다. 당연히 소설은 중심 인물을 따라 유발되기마련인 긴장도 없고 사건 진행의 묘미도 없다. 단지 독자적인 단편 속에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만을 등장시켜 이들이 이루어 가는 순환만을 보여준다. 시·공간과도 무관한 채 시작도 끝맺는 것도 아닌 사건들을 수기, 편지, 단편, 일기, 철학적 단상 등으로 표출하여 통일된 어떤 인물을 제시하여 보일 뿐이다. 기법상 현대 소설의 모태가 되기도 한 괴테의 이러한 시도는 자칫 소설의 내용과 흐름에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은 읽는 이로 하여금 내내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저것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긴장을 유발시킨다. 한 문장, 한 단어 속에 최대한의 의미를 함축시켜 문장 속에 숨어 있는 보물을 찾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소설의 작자 괴테는 장년에서 죽음 가까이에 이르도록 써야 했던 이 소설을 일컬어 “이 소설 「편력시대」에서 시도되었던 모든 것들은 젊은 날의 내가 불처럼 타오르는 창조적 정신을 가지고 행한 모든 것들이며 장년에 이르러 끊임없이 생각해 왔던 것들, 소망해 왔던 것들의 표현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관된 줄거리가 없어 각기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뼈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된 인체를 이루어가는 소설의 내용을 시각을 달리하여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제1편/ 돌
“아버지, 이 돌의 이름이 뭐지요?”
돌 위에 앉아 있는 빌헬름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 이 소설의 도입 부분. 어린 펠릭스가 아버지 빌헬름에게 던진 첫번째 질문이다. 이 질문은 곧 빌헬름과 펠릭스가 이후 진행되어갈 이 소설 전체를 향하여 내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이어 그림 속의 성 요셉 가족에게 인도되어 간 펠릭스는 성전 계단에서 ‘몬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두번째의 돌을 줍는다. 두번째로 등장한 이 돌은 이미 이름이 없는 돌이 아니다. 이 돌은 곧 빌헬름에게 탑의 대원인 야르노가 자신들을 향하여 오고 있음을 알게 한다. 야르노와 동굴을 탐사하던 펠릭스는 이곳에서 또다시 세번째의 돌이면서 인간에 의해 가공된 돌이기도 한 상자를 발견한다. 잠겨 있는 이 상자는 펠릭스로 하여금 미래의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게 한다. 제1편 내내 도래하고 있는 세대인 펠릭스와 함께 한 이 돌들은 빌헬름이 우정을 느낀, 물에서 나와 다섯 겹의 태양빛에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진 알몸의 소년처럼 골동품상을 운영하는 노인의 손에 맡겨지면서 인간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하여 제1편의 끝부분에 이르른 소설은 도입 부분, 돌의 이름을 물었던 펠릭스의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골동품상 노인에게 상자를 맡기는 빌헬름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상자의 열쇠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겠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제2편/ 사랑
사랑이 이것을, 또는 저것을 거기에 있게 한다. 사랑을 말하고 있는 이 소설의 제2편엔 괴테가 제시해 보인 사랑의 여러 형태가 등장한다. 아버지와 약혼했다가 젊은 아들의 출현으로 아들마저 사랑하게 된 처녀, 옷감 짜는 처녀를 짝사랑한 청년, 소인국의 공주를 사랑한 이발사, 거부당한 사랑에 대한 고통으로 세계 끝까지 말을 몰아간 청년의 이야기들이 일기, 수기, 편지, 독립된 단편들로써 펼쳐진다. 그들은 한결같이 어느 한 순간 시작된 이것, 사랑에 의해 그 희열 속에 전 존재를 내던진 이들에 의해 만물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숨겨져 있던 배후의 세계조차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영원의 출발지이자 귀착지이기도 할 이것 앞엔 죽음보다 가혹하고 죽음과 같이 용서할 줄도 모르며 가차없이 인간의 생명과 환희를 해치려 드는 운명조차 그 힘을 잃는다. 자신 안에 현현해 있는 신의 체험이기도 할 제2편의 끝부분에 이르러 괴테는 도무지 불가사의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이 신비 속에 놓인 인간의 의식을 편력자의 마음의 성찰을 통하여 최대한 극대화시킨다. 작자 괴테가 말하고 있는, 언제나 현재인 사랑은, 곧 소설 속의 펠릭스가 헬실리어에게 석판에 철필로 새겨 넣어 보낸 “펠릭스는 사랑하다 헬실리어를. 승마 교관은 곧 온다.”인 것이다.

제3편/ 생명
생은 생을 창조한다.
제2편의 끝부분, 우정을 느낀 소년의 익사로 인간 육체의 경이에 눈뜬 빌헬름은 약혼자인 나탈리어에게 오래지 않아 만나게 될 영원한 여성에 대해 말한다. 소설 속에 잠깐 등장한 조각가는 인간의 뼈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빌헬름에게 “덮개가 없는 인간만이 본래의 인간이다. 조각가는 형체도 되어 있지 않은 불쾌한 진흙을 형상으로 변조해 낼 때 신 옆에 있는 것이 된다”라는 말을 한다. 무언가로 되어가려는, 무언가를 창조하려는 조각가이자 조각가 앞에 놓인 한 덩어리의 돌이기도 한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은 소설의 마지막인 제3편에 이르러 다시 한번 새로운 세계 앞에 선다. 출발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이제 새로운 세계에 걸맞는 새로운 인물이 필요하다. 이들 앞에 괴테가 내세운 인물은 단 한번 등장했을 뿐인 마카리어이다. 두어 마디의 대사를 끝으로 소설에서 사라져버려 신비로움을 더했던 중년의 마카리어에게 이 역할을 맡긴다. 레날도를 비롯한 등장 인물 모두에게 태양과 같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마카리어야말로 빌헬름이 예견하고 있었던 영원한 여성이었던 것이다.

독일 철학자이며 「서구의 몰락」의 작자인 시펭글러는 이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에 대해 ‘죽은 자연이 산 자연에 대적하고 있다. 자연 연구가로서의 괴테는 우리에게 발전되어지고 있는 것의 모습을, 생활하면서 발전해 가는 인상적인 형태를 눈앞에 들이대어 보여준다. 공감, 직관, 비교, 직접적인 내적 확신, 정확한 감정, 상상 등을 통한 이러한 일련의 기술은 그가 움직이고 현실로 다가가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시펭글러의 표현대로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빛과 어둠의 세계를 살아간다. 빛에 닿아가려 또는 어둠에 닿아가려 끊임없이 전진해 간다. 이러한 이들의 모습은 등장 인물 내부의 사고와 행동이라는 상호 작용을 통하여 외부로 드러내진다. 이들에게 세계는 곧 가장 깊은 감정의 체험에서 비롯된 공간에 다름아니며 그곳이 설혹 공허뿐인 공간에 불과할지라도 그곳엔 참된 무엇이 있다.
인간을 끊임없이 헤매게 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렇게 하는가, 작자 괴테는 소설이 도입 부분부터 소설 속의 인물들 개개인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모색하게 한다. 얼핏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랑같아 보인다. 공간이, 대기가 지구의 외피를 감싸듯이 초우주적인 사랑이 우주를 감싸 변함없는 생명을 부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소설을 읽어 보면 소설은 또다시 괴테가 요구하고 있는 답은 어쩌면 이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강한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시펭글러가 빛과 어둠, 산 자연과 죽은 자연이라 파악한 이 세계조차 소설 속에 산재해 있는 수천의 돌 중에 단지 하나의 돌을 본 것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불러 일읕킨다. 그만큼 이 소설의 내용은 방대하고 심오하여 듣는 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우주의 온갖 음을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겨우 스물네 살에 「베르테르」라는 인물을 탄생시켜 인류에게 산 자연을 보여주었던 괴테는 지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던 여든두 해 동안 1만 5천여 통의 편지와 시, 소설, 여행기 등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죽음 직전까지 계속된 「괴테와의 대화」를 비롯한 모든 작품을 빌어 자신에 대해 말해왔다. 그러함에도 괴테를 읽는 그 누구도 괴테가 누군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괴테 스스로 자신의 본질에 관하여는 철저한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가장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는 『시와 진실』에서조차 괴테는 체험한 것의 암시만을 보일 뿐, 자기 자신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자신의 실존에 관한 것들을 추상적인 것들 뒤로 은폐시켜 간다. 다른 모든 인간에게 그러하듯 괴테에게조차 ‘고유한 자아를 들여다보는 시선은 자신의 생명의 비밀에 손대는 것’이기에 두려운 것이며, 그 비밀의 현재화를 위한 시간 또한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역시 태양의 준마들이 몰고 가는 마차 위에서 추락을 피하려 쉴새없이 채찍을 휘둘러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간 괴테의 「편력시대」는 신의 장엄과 같은 ‘펠릭스’라는 미래를 남겨 놓은 채 완결이 아닌 종결의 지점에 도달해 있다. 자신의 삶을 본성에 맞는 것을 완성시키고자 노력했던 모험가의 삶이라고 했던 괴테 또한 또 다른 모험을 향하여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려 한다. 지나온 자신의 삶이 그러했듯 펠릭스 앞에 온갖 의문과 추측들만을 남겨 놓은 채 저편을 향해 떠나려 한다. 어쩌면 곧 당도하게 될 그 세계는 지금까지의 세계가 그러했듯 괴테가 만져 보고 알아채기도 전에 지나가버리게 될런지도 모른다.
배는 바야흐로 시간이 수억 년 어루만져 현재의 형태를 만들어 놓은 돌 위에, 드문드문 익사한 인간의 뼈들도 섞여 있는 돌 위에 멈추어 서고 있다. 배에 오르기 전 아버지 빌헬름은 남아 있게 된 펠릭스가 염려스러워 몇 마디를 선물로 남긴다.
“어떤 존재도 허물어져 없어질 수는 없다. 영원한 것이 이들의 마음 속에서 계속 움직인다. 실존에서 네 자신을 행복하게 하라. 실존은 영원한 것, 만물을 장식하고 있는 보물들 그것들은 법이 보존해 준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