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1998 / 32.5 x 27.5
두 지붕 / 1991 / 22.5x20
다리 / 1990 / 22.5x20
손 / 1990 / 22.5x20
꽃들 / 1991 / 22.5x20
종이, 꽃, 돌 / 1988 / 27.5x33.5
장미 / 1988 / 17.5x27.5
달과 꽃 / 1988 / 32.5x30
발레 / 1988 / 27.5x34
새와 코스모스 / 1988 / 27.4x34
나무와 양귀비 / 1988 / 22.5x20
찻잔과 바이올린 / 1988 / 30x32.5
모자 / 1988 / 22.5x20
편지 / 1988 / 22.5x20
나무와 네개의 의자 / 1988 / 32.5x30
담 / 1988 / 32.5x30
연주회 / 1988 / 27.5x34
음료수 / 1989 / 22.5x20
수박 / 1989 / 33.5x27.5
두개의 의자 / 1989 / 22.5x20
일기예보-N / 1978 / 34x30
잔디위에 / 1977 / 33x27
잔디 위에 흰 손수건
작은천막 / 1976 / 33x27
잔디위에 벼게
나비들 1991
지붕
담(1990)
황규백(黃圭伯)
1932 부산 출생
1968 파리의 에콜 드 루불, S. W. 헤이타 17 공방에서 수학
개인전
1970 보니턴화랑(시드니)
오파베화랑(파리)
1975 브렌타노(뉴욕)
프린트그룹(필라델피아)
옥스퍼드화랑(영국)
우그스트화랑(뮌헨)
프레드리크슈타트(노르웨이)
1976 비카·쿤스트화랑(노르웨이·오슬로)
1977 매트로·콩땅포랭(프랑스·액상푸로방스)
1978 락포드대학화랑(일리노이스) / 아티산느리 (프랑스·다종)
해리스화랑(텍사스)
1978 85, 85, 88, 91현대화랑(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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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백 판화의 매력은 많은 관람자 층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표현에 있다. 국제 판화제에서 여러 번 입상한 바 있는 그의 판화들은 뉴욕미술관, 영국박물관, 국립 현대 미술관 등 여러 주요 미술관의 콜렉션이기도하다.
1932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남다른 시적 감수성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그의 작품의 강한 매력이다. 여기서 그의 초기부터 근작까지의 작품세계를 조망해 봄으로써 독특한 그의 판화 작업들을 제대로 이해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초기부터 실제성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그의 작업의 주요과제가 되었다. 특히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추상표현주의에 본능적으로 이끌린 그는 초기 시절인 1950~60년대에 추상 표현주의 영향을 받아들여 자신만의 추상화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는 전형적인 작품경향은 1960년대 주류를 이룬 미니멀리즘을 향한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새로운 방법과 재료를 모색하는 작가의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과정과 이를 통한 경험의 축적이다. 무엇보다 변화를 중요하게 여긴 그는 새로운 기회를 잡으려는 의도에서 한국에서 이미 얻은 작가로서의 안정된 생활을 떠나 파리 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도전적인 태도와 맥을 같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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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1988, 27.5×34cm 메조틴트, 드라이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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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 17/ 뉴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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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손수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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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 환상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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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17
1968년 작가는 파리로 떠나 Ecol du Louvre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고, 같은 시기에 아틀리에 17(Atelier17)에서 판화를 배움으로써 그의 판화 인생이 시작되었다.
"사실, 이 곳에서 작업하는 작가들 모두는 각각의 모국에서 이미 명성을 얻은 작가들입니다. 아틀리에17은 새로운 도시에서 우리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자 하나의 공동체였습니다." - 작가의 말
아틀리에17에서의 첫 해 동안의 에칭작업은 그 이전 그가 해오던 회화의 연장선상에서 이해 될 수 있다. 그는 다양한 판화 기법에 대해 관심을 가졌는데 그의 동판화 작업에서 자주 보이는 납으로 땜질한 금속판 판화들에서 그의 이러한 관심을 엿볼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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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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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이르러 파리시기의 초기에 제작된 판화들은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파리, 미시간 등의 국제 전에 출품되어 많은 애호가 층을 주목을 받았으나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자 했던 그는 다시 현대 미술의 전지구적 중심지인 뉴욕으로 옮기게 된다. 1970~73년대는 그에게 상당히 힘든 시기였다. 많은 시행착오적인 힘든 작업 끝에 작가는 "그만의 기법"으로 즐겨 사용하는 메조틴트 기법을 발견하였다. 그의 주요 표현 매체로써의 메조틴트 기법은 에칭이나 땜질기법 같은 다른 판화 기법과 복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작가에 따르면, 그가 이 기법에 매료된 것은 작가가 그 효과를 최대한 조절할 수 있다는 데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고 한다. 메조틴트 기법은 사실적인 이미지를 내기에 적합한 이상적인 기법이다. 1972년에 제작된 〈Echo, Record F〉와 1973년에 제작된 〈Sky RB-N, Nail and Grass〉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
1973 42.5×34.5cm, 메조틴트, 에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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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 마운틴에서 영감을 얻다-흰 손수건의 등장
1973년은 중요한 시기로 그는 〈풀밭 위의 흰 손수건〉을 제작하면서 〈Echo, Record F〉와 〈Sky RB-N, Nail and Grass〉에서 발견한 형식과 주제를 이어 계속 작업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미 그의 첫 메조틴트 작업인 〈Nail and Grass〉에서 배경을 흰색으로 했는데, 이는 종래의 검은 배경에 반대되는 혁신적인 것이다. 이러한 흰색 배경은 평범한 소재들을 환상적으로 재창조하는 그의 재능을 잘 반영해 준다. 〈풀밭 위의 흰 손수건〉을 제작한 후 작가는 그가 끊임없이 매달려 왔던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하늘에 떠있는 손수건과 하늘을 향해 풀밭 위에 펼쳐진 손수건이 단지 그 형태만이 재현된 것이 아니라, 인생의 경험이 화폭으로 그대로 옮겨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풀밭이나 손수건 등과 같은 이미지의 근원은 베어 마운틴(Bear Mountain)이었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뭔가 새로운 구상을 할 때나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뉴욕 근교의 베어 마운틴으로 가서 머리에 손수건을 덮고 풀밭에 누워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리고 황규백은 대지와 꽃과 풀잎을 노래한 휘트만의 시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 속에 그러한 이미지를 창조해 냈다.
"나는 이제 대지의 위임에 압도당하고 있다. 대지는 평온하며 인내심이 있다 대지는 저토록 부패한 것에서 저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생장시킨다."
잔디밭에 누워 옆으로 스쳐 보이는 풀, 하늘, 그리고 손수건 등은 그가 명상에 빠질 수 있는 매개가 되며, 이때 작가는 머릿속에 떠오른 상을 스케치로 옮긴다. "손수건을 하늘에 걸 수는 없을까?" 어느 날,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베어 마운틴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라 그것을 스케치로 옮겼는데, 그것이 다음으로 제작되는 판화의 주제인 풀밭 위의 손수건이다.
황규백은 초현실적이며 달콤한 삶의 신비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데, 그의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제시되는 이미지들은 현실의 삶에서의 사물의 기능과 이미 굳어져 버린 인습적 관념을 뒤집는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된다. 개인적인 청결의 도구로 여겨지는 손수건에 대한 관념은 1978년 작인 〈나무와 손수건〉에서 외형을 감싸는 베일로서의 의미와, 같은 해의〈두개의 기둥과 흰 손수건〉, 89년에 제작된 〈두개의 집〉에서와 같이 자연과 사람이 만든 세계 사이에서의 명상에 잠길 수 있는 도구로서 그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외부세계에 대한 관람자 태도를 변화 시킨다. 작가의 이러한 상상적 전치기법에 의해 감상자는 좀 더 자유롭게 사고의 흐름을 형성하게 된다.
이런 전치기법에 의해 제작된 〈잔디 위의 베개〉는 그의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로 잔디는 휴식의 상징물인 자연의 침대이며, 베개에 그려진 장미는 재생을 상징한다. 그리고 전성기 작 가운데 하나인 1988년에 제작된 〈Ballet〉(그림1) 에서 잔디밭은 비록 화면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서정적으로 결합된 하늘거리며 서있는 양귀비와 발레화를 한 화면에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즉, 잔디는 작품 속에서 안정과 휴식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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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흰 손수건> 1973 33×27cm, 메조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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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밭 위의 베개> 1976 33.5×27.5cm, 메조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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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적 환상의 세계
그는 초현실주의적인 경향에 친밀감과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데, 특히 르네 마그리트가 주로 사용한 일반적인 관념을 뒤집는 전복적 수법이 작가의 76년 작인 "Flower-s(Homage to Magritte)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이 작품에서 잔디 위의 꽃`으로 뒤덮인 그림자로 표현된 중절모를 쓴 남자의 형상은 바로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실루엣으로 황규백이 자신의 언어로 재해석하여 표현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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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화된 사물들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그는 실제 사물에 함축적 의미를 부여하는데, 그 좋은 예로 〈우산〉 연작들과 〈의자 위의 새〉, 〈네 개의 의자〉, 〈빨간 의자〉, 〈검은 의자〉 등의 의자 연작들이 있다. 화면의 구성과 사물들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비례를 조정하고 사물들끼리 무리를 짓는 과정을 통해 형상들은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물들은 어쩌면 상실됐을지 모를 인간성의 모습이며, 인간의 대역으로서 공간 내에 존재한다. 〈두개의 우산〉은 이러한 사물의 의인화를 잘 보여주는 예로, 큰 남자용 우산과 우아한 여성용 파라솔이 다정하게 함께 벽에 기대어져 있는데 이것은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이 우산들의 주인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임을 암시해 준다. 또한 그의 판화는 감상자가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울림의 구조를 이룬다. 화면내의 사물들은 서로 얽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복잡한 울림의 구조를 이루어 화면내의 사물들간 뿐 아니라 화면 밖의 보는 이와도 서로 관계를 이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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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1982, 35×30cm 메조틴트, 드라이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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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의자> 1984, 35×30cm 메조틴트, 드라이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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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둠 속에 갇힌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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