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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비유가 다 시가 될수는 없다 / 김춘수
비유에는 크게 나누어 직유와 암유가 있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수주 변영로의 [논개]라고 하는 시의 한 부분인데, <물결>이라는 단어를 <보다도>라는 보조형용을 매개로 해서 <강낭콩꽃>이라고 하는 단어에 비교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 읽어 보면 알 수 있다시피 단순히 <물결>의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강낭콩꽃>을 들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시적 비유라고 할 수가 없다. 산문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해와 하늘빛이 보리밭에 달 뜨면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따.
미당 서정주의 [문둥이]이라는 시의 전문이다. <울음>을 <꽃>에 비유하고 있는
이 단일 직유는 시적 비유가 되고 있다. 단순한 울음이 아니라 아주 열정적인 격렬한 울음인데, 그러한 상태를 <꽃처럼 붉은>이라고
비유함으로써 그 상대가 한층 생생하게 호소되어 온다. 이런 경우 주의할 것은 비유의 부분만 볼 것이 아니라,시 전체의 분위기를 통해서 비유를
봐야 한다. [문둥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시는 시 전체의 분위기로 봐서 비유가 시적으로 살아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이렇게 같은 단일 직유라도
시인에 따라 시적이 되고, 시적이 덜 되고 한다. 언어는 그러니까 순전히 그것을 다루는 시인의 손에 따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옥안(玉顔)을 상대하니 여운간지명월(如雲間之明月)이요,
[춘향전]에 나오는 이 대목은 <옥안>을 <운간지명월>에 비유하고 있는 확충 직유다. 여기서도 <옥안>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수식의 역할밖에는 더 못 하고 있는 것이 <운간지명월>임을 알 수 있다.
어름 우희 댓닙자리 보와 님과 나와 어러주글만뎡
고려속요인 [만전춘]의 이 대목은 <만뎡>을 매개로 문과 문이 비교되고 있는 확충 직유다.
그 애타는 심정이 시적으로 잘 살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