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을 위한 명상과 시적 거리 ―황지우의「너를 기다리는 동안」
김 현
자 (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교수)
(가)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나)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도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라)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1. 황지우의
시세계
1980년대 황지우가 발표한 실험적 기법의 해체시들은 그를 전위적인 시인으로 문학사에 위치시켰다. 그는 해체
실험을 통해 폭력으로 점철된 시대에 대응하는 미적 형식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등단과 동시에 문단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의 시의 기발한
발상과 형식적 파괴, 일탈 등은 우리에게 강렬한 깨우침과 충격의 인상으로 남아있다. 초기의 전위적인 시세계는 이후「게 눈 속의
연꽃」등으로 가면서 점차 변모되는 양상을 보인다. 내면의 섬세한 정조를 포착하는 가장 서정시다운 시들이 그의 시세계를 변전·확장하게 되면서 그의
해체적인 폭발성만큼이나 서정성 또한 놀라우리만큼 빛을 발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선적인 깨달음을 본격적으로 시적 직관과 연관시키기 전부터
그의 시에는 실상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함께 강렬한 정서적 호소력을 가진 서정성이 혼재해 있었다. 그는 일상에 대한 차분한 성찰을 통해
그 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내적 투쟁이 폭발하는 지점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와 세계와 자아가 안고 있는 역설의 진리를 섬세한 감각의 날이 선
시어를 통해 형상화하였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특히 그의 서정적 호소력을 십분 공감할 수 있는 시이다.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사건을 우리가 겪는 모든 종류의 기다림의 순간과 그때 느끼는 온갖 감정들을
집약하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론적 사건으로 중층화하고 있다.
2. 기다리는 시간의 구조
우리의 삶은 어쩌면 기다림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유년시절에는
장에 간 어머니를 기다리고, 젊은 날에는 애인을 기다리고, 늙어서는 자식의 방문을 기다리는, 우리 생의 시간적 국면들은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흘러오고 또 흘러간다. 생의 의지는 이러한 기다림의 행위 속에 내재하는 자아와 타자의 관계성을 통해 발현된다. 현재에는 부재할지라도 끊임없이
기다림을 유발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때 주체는 비로소 고통스러운 세계 속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아로새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청자지향적인 발화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는 현상적 청자인 ‘너’를 향한 나의 절실한 ‘기다림’을 섬세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님, 먼 길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남편 등을 며칠이고 몇 달이고 기다리다가 그 자리에서 돌이 되어버린 여인들에 관한
무수한 전설은 기다림이 내포한 고통과 인내, 내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수동적인 속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시에서의 화자, 즉 기다림의
주체가 보여주는 성격은 지향대상의 부재라는 현실적 갈등을 적극적으로 청자에게 접근하려는 의지적인 행위를 통해 극복하려 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이 시의 화자는 보편적인 기다림의 양태인 수동적 행위에서 벗어나 자아와 타자의 거리를 직접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능동적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보다 긍정적인 미래관을 담보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에 대한 화자의 능동적 태도는 크게 네 개의 의미단락으로 나뉘는
시행 전개 속에서 변화되는 양상을 통해 드러난다. 먼저 1-5행 (가)에서는 ‘너’를 기다리는 실제적 상황 속에서 잔뜩 긴장되어 있는
화자의 마음의 상태가 표현되고 있다.
(가)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2행의 “미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화자는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에서 나타나는 화자의
긴장은 이렇게 그가 약속 시간에 앞서 와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시간이 다 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네가 언제 올지 확신할 수
없다. 기다림의 시간만큼 시간의 상대성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 있을까. 비단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뿐 아니라, 시험 심사 결과를 기다릴
때나 병원 진찰 결과를 기다릴 때, 일분은 한 시간같고 하루는 영원의 시간같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두근거림에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만큼, 시계
바늘은 느릿느릿 움직인다. 그것은 베르그송이 말하는 설탕이 녹는 시간 동안의 기다림 같은 것이다.
설탕물 한잔을 마시고 싶을 때
내가 서둘러야 소용이 없고 설탕이 녹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조그마한 사실은 큰 교훈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은
물질계의 전 역사에 걸쳐 적용되는 수학적인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설사 세계의 역사가 단숨에 공간속에 전개되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은 나의 조바심, 다시 말하면 마음대로 더 늘일 수도 없고, 더 줄일 수도 없는, 나에게 속하는 지속의 어떤 부분과 합치되고 있다.
그것은 사유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적인 것이다. 그것은 상관성이 아니고 절대적인 것이다.
전적으로 나의 체험과 관계된 절대적인
지속의 시간, 불안, 초조, 기대, 조바심 이 모든 복합적인 감정과 수 백 가지의 생각들이 머릿속에 오가는 이 순간의 복합적인 느낌을 화자는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이 있을까”라고 말하고 있다. 기다리는 순간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체험하게 된다. 감각의
모든 날은 세워지고 신경이 온통 곤두선다. 카페의 시끄러운 웅성거림 속에서도 세상의 온갖 미세한 소리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와 박힌다. 내 몸의
안과 밖에서 울리는 소리들이 확성기를 갖다 댄 듯 커진다. 기다리는 동안 들리는 모든 발자국 소리와 나뭇잎소리마저 ‘너’가 오는 소리로 들릴만큼
온 신경이 ‘너’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화자의 불안과 떨림은 청각과 촉감이 결합된 의성어 “쿵쿵”을 통해 절실하게 전달된다.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의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는 화자가 가슴 졸여 하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발자국이 화자의 가슴을
밟고 지나가는 상황을 연상시키는 술어 “쿵쿵거린다”와 주어 “발자국”의 연결 또한 화자의 긴장과 불안을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1-5행(가)이 ‘너’가 오게 될 미래적 상황에 대한 화자의 기대와 긴장된 마음 상태를 초점화하고 있다면 6-12행(나)은 기다림의 과정
속에서 화자의 희망이 점차 좌절되어 가는 상황을 전경화하고 있다.
(나)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대상에 대한 사랑과 함께 대상이
부재하는 주체의 실존적 상황을 동시에 지시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기다림이라는 것이 가슴 벅차는 희열과 “가슴
애리는”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다는 것을 안다. 6행의 단정적 언술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와 7행의 자문자답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는 희망과 절망의 이중적 감정에 휩싸여 네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점점 엷어지고 있는 화자의 내면상황을 드러내준다.
이는 특히 절정으로 상승했다 급격하게 하강으로 내리꽂히는 화자의 어조 변화를 통해 유표화되고 있다. 10행에서 한행으로 처리된 “너였다가”는
화자의 기대감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순간을 보여준다. 이렇게 절정에 달한 감정은 11행의 전반부에서 반복되고 있는 “너였다가”를 통해 더욱 더
배가된다. 그러나 기대로 가득 찬 감정의 흐름은 그 뒤의 쉼표, 즉 인위적 휴지에 의해 이내 끊어져버린다. 이제 “너였다가”는 “너일
것이었다가”라는 불확정적인 언술형태로 전환되고, 절정으로 치닫던 감정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여기서 ‘너였다가’라는 언술형의 반복과
변형은 마지막의 변형된 동사 “너일 것이었다가”가 갖는 부정적 의미를 강조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너’였다면 ‘나’의 확신에
찬 기대는 현실로 이루어졌으리라. 하지만 문을 통해 들어온 것은 ‘너’가 아니었다. 12행 “다시 문이 닫힌다”는 ‘문’이 열릴 때마다 화자의
가슴을 뛰게 하던 희망이 거듭 좌절되는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좌절의 순간은 오히려 새로운 국면이 도입되는 지점이 되고
있다. 국면의 전환은 (가)-(나)에서 형상화되고 있는 ‘나’의 소극적인 기다림이 13-19행 (다)에서 적극적인 기다림으로 변모되기 시작하면서
이루어진다.
(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도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너’로 지칭되던 기다림의 대상이 가장 간절한 희구를 담은 “사랑하는 이”로 불려지면서 화자의 감정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다.
화자의 간절한 기다림은 “사랑하는 이여”라는 직접적인 부름 속에서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면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희망을 또 다른 모습으로
발현시키기 시작한다. “문이 닫힌다”라는 절망적인 좌절의 경험 이후 “오기로 한” ‘너’는 이제 “오지 않는 너”로 지칭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오지 않는 너”일지라도 화자는 끝까지 ‘너’를 기다린다. 아니, 이제는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너’에게 간다. ‘너’가
오지 않는 시간이 계속되자 처음에는 머물러서 기다리던 화자가 직접 ‘너’에게 가기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동적 이미지로의 변환을 통하여
화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만남이라 할지라도 내가 너에게 가고, 네가 나에게 오는 행위의 복합성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희망적인 미래상을 확보하게 된다. 이제 화자의 마음은 ‘네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에서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너에게 가는 마음’으로
발전한다. “마침내”라는 시간부사는 이러한 마음의 발전상이 하나의 의지로 집약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전환점을 나타내는 이 시어는 기다림이라는
화자의 수동적 태도를 ‘너’를 직접 찾아가는 능동적·적극적인 태도로 바꾸고 있다. 네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서로를 향해 가고 있는 두 사람이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나’는
기다리고 ‘너’는 오는 일방적 관계는 ‘너’가 오고 또한 ‘나’도 ‘너’를 향해 가는 쌍방적인 관계로 변화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도 오고 있다”에서 ‘너’와 ‘나’가 처한 공간과 시간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너’를
기다리는 물리적 시간이 심리적 시간으로 바뀌어 궁극적으로는 두 사람을 만나게 만들 영원한 시간으로 변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만남을 위한
‘너’와 ‘나’의 ‘가고 옴’은 지속적인 운동성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된다. 20-22행(라)에서 화자는 직접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감으로써 너를 향해 가는 행위를 실천적으로 완성해낸다. “네가 오기로 한 곳”의 문을 열어젖히고 외부적 공간으로 나아감으로써
화자는 아직 오지 않은 ‘너’를 마중하고 있는 것이다.
(라)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이러한 기다림의 순간은 사랑 자체에도 해당된다. 이때 기다림은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가 그의 마음과 통할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다. 둘의 만남, 즉 사랑의 결실이 ‘나’와 ‘너’가 서로를 향해
동시에 옮기는 실천적 발걸음을 통해 비로소 얻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하여 두근거리며 뛰는 심장은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발소리이며, 내가 너의 마음으로 가고 있는 나의 발소리이기도 하다.
3. 물리적 거리와 시적
거리
(가)에서 화자는 앉아서 너를 기다리기만 한다. 화자는 기다리고 있지만 ‘너’가 화자에게 오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분명 화자와 화자가 기다리는 대상인 ‘너’ 사이에는 만나지 못할만큼의 실제적인 거리가 존재한다. 바로 이 거리감이 화자를 애타게 하는
요소이다. 이 시가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이 거리감이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에서 그 긴장감은 극도로 팽팽해졌다가 수축한다. 어조 또한 점점 상승하다가 “문이 닫힌다”에서 갑자기
하강한다. (가)-(나)까지 평면적으로 진행되던 시적 정황은 (다)에서 화자의 발상의 전환을 통해 획기적으로 뒤집어진다. “먼 데”,
“오랜 세월”에는 공간적·시간적 거리감이 드러나 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리다 못해 화자는 자신도 ‘너’를 향해 가기 시작한다. 너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직접 너를 찾아 나서는 간절한 마음은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
부분에서 갑자기 시의 거리감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속도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 동안 ‘너’가 오는 것으로만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거리가 ‘나’
또한 ‘너’를 향해 감으로써 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 속에 시간적 거리와 공간적 거리는 기다리는 시간과 장소를
통해 형상화되어 있었다. 화자가 청자와 느끼는 심리적 거리는 이러한 실제적 거리를 통해서 2차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화자는 간절함과 의지를 통해
스스로를 움직임으로써 물리적 인 거리를 좁히고 극복한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너에게로 가”는 이 움직이는 행위는 ‘나’와
‘너’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동시에 둘 사이의 물리적 단절을 넘어서려고 하는 화자의 간접적인 의지 표출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화자는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가 걸어오고 있을 그 길을 ‘너’가 발걸음을 멈출 이곳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시간은 “너에게 가고 있”는 화자의 역동적 움직임으로 인해 ‘너’와 ‘나’의 만남이 상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실천적 시공이 된다. 여기서 시적 공간은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라는 한정된 자리에서 나도 너를 향해 계속 가고, 너도
나를 향해 계속 오고 있는 ‘영원성을 지닌 공간’으로 전환된다. 서로에게 다가가는 화자와 청자의 감정을 통해 둘 사이를 단절시켰던 물리적 거리가
극복되고 있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은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적극적인 마음의 움직임이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과의 실제적인
거리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화자의 ‘심리적’ 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가깝게 경험되는
것이다.
4. 맺는 말
황지우의「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기다림의 복합적인 정서와
거리감이 적절히 긴장관계를 유지하여 독자로 하여금 체험적 공감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강렬한 미적 쾌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미적
쾌감이란 미적 관조의 대상과 그 대상의 정서적 경험을 양식화하는 과정에서 대상과 얼마나 거리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생겨난다. 즉 시인의
창조과정에서 내적 경험과 외적 형식의 갈등을 조정하는 장치이다. 이러한 심리적 거리는 시 창작에 있어서 시적 화자의 시점, 다양한 이미지의
적절한 사용, 담화 양식의 표현기법을 통해 확보된다. 시적 거리 의식은 언어를 통해 상상력의 공간을 무한히 확장해 나간다. 화자와 대상,
독자와 시인 간의 거리, 멀거나 가깝거나 적절히 균형을 유지하는 거리 등은 시의 표현과 미감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긴장감을 조율하는 악기의 현과
같은 요소이다. 시를 통해 나타나는 거리는 물리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 시를 읽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적, 미적 거리이므로 그
응축과 확장이 무한하다. 시 속에 형성된 공간감과 독자의 정서적 거리를 통해 시 텍스트의 의미는 단순히 행간, 자간의 거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광범위하게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오고 있는 너’와 ‘가고 있는 나’, ‘밖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와 ‘심장에서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만들어내는 쌍방향적인 움직임을 통해 나와 타자, 안과 밖을 가르는 문을 역동적으로
넘나들면서 새로운 시·공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물리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 현실적 시간과 초월적 시간이 이어진 길이며, 그 길
위에서의 기다림은 사랑하는 사람 둘 만의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존재와 언어와 세계를 포괄하는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정서를 표출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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