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염지천 사내>님의 블로그에서
목련, 달빛을 봉하다 외 1편 / 문신
한지(寒地)에서 삼동을 났다
소식이 여전하므로 마음이 헐거웠다
낡은 신발 한 켤레
축 맞춰 안쪽으로 돌려놓고
마룻장 위 발자국을 지웠다
낯선 방에서 뒤척임이 오래 갔다
새벽녘에 가까운 숲에서
적막을 놓치는 소리가 났다
필경 서툰 짐승이리라
저물녘에는 바람이 골짜기를 건너
북쪽으로 몰려갔다
꼬리털 몇 낱 목련 가지에 걸려 울었다
물끄러미 듣다가 괜히 귓불만 도타워졌다
한밤에 달빛 몇 타래 끊어다가
구구절절하여 한 폭에다 못 쓰고
차곡차곡 결을 따라 접어 두었다
헐거워진 마음이 환해지도록 넣어 두었다
낮과 밤이 고르게 모인다는 춘분날 아침
문 열어보니 뜻하지 않은 소식이 왔다
검은 가지마다 목련
나 말고 누가 밤새 달빛을 접어 봉해 두었을까
차마 펼쳐보지 못할 사연임에 틀림없다
비로소 한 켤레 낡은 신발의 축을
바깥으로 돌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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