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당선작

[2008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진열장의 내력/임경섭

자크라캉 2008. 9. 29. 17:36

[2008 중앙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열장의 내력 / 임경섭

 

 

시 당선소감“꿈에 그리던 별 따다가 내 방에 걸어”

일러스트=강일구 기자 ilgoo@joongang.co.kr

 

그림자는 아무도 기대지 않은 벽에서 몰려와 잡풀 무성한 골목 안에 슬며시 몸을 풀어 놓고 갔다. 그런 날 밤이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친구의 고층 아파트를 찾아가곤 했다. 나를 달로 화성으로 북극성으로 날라다 줄 것 같던 사각의 방. 한 번도 눌러 보지 못한 비밀의 버튼은 꽤나 높은 곳에 매달려 반짝였다. 별을 딸 수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올라탈 수 있던 공중의 꿈들.

그런 반짝이는 꿈들을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당선 통보로 즐거운 나의 일상 하나를 잃게 되었지만, 별 하나 따다가 내 방에 걸어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낙선을 반복할 때마다 시 쓰기란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으나, 끝까지 펜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어머니의 유언에 있었다. 어머니와 마지막 순간 꼭 좋은 시인이 되겠다고 약속한 지 7년 만에 당신과의 약속을 절반 지킬 수 있게 되어 기쁠 따름이다. 하늘에서 얼마나 흐뭇해하고 계실지, 그 미소가 오늘 밤 계속 아른거린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아직 너무도 부족한 나에게 시 쓰는 것을 허락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끝까지 살아남는 시인이 되리라는 약속과 함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이토록 반짝이는 언어의 빛들을 처음 알려주신 양승준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게으른 나를 항상 뜨겁게 채찍질하시며 시에게 목숨 거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박주택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열심히 쓰라고 언제나 따뜻하게 격려해 주신 김재홍, 김종회 선생님과 이문재 선생님, 그리고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신 최상진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경희대 국문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끝까지 함께 시 쓰기를 약속한 재범·은기·규진·진명·은지·현진을 비롯한 여러 경희문예창작단 선후배 여러분과 문학도로서의 삶에 나침반이 되어 준 현대문학연구회의 선배님들께도 감사드린다. 또한 하늘새재 선후배들을 비롯해 따뜻이 관심 가져준 국문과 선후배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이 밖에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분들이 너무도 많지만, 지면이 작은 것을 핑계 삼아 차후에 일일이 감사함을 전하겠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임채순님을 비롯한 온 가족과 함께 이 기쁨을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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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심사평]


“사물을 보는 시선 삶 전체로 향해”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선을 하게 되어 있다. 낙선한 한 사람으로 이 글을 읽을 것이다. 최소한 유심히 읽을 만한 사람은 그 낙선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심사소감에 동의할 사람은 없을 듯싶다. 실은 심사소감처럼 상투적이고 설득력 없는 글도 없다. 시대가 변해도 사람이 바뀌어도, 심지어는 응모된 작품들의 경향이 그렇게나 변해도 예나 지금이나 초지일관 심사소감은 새롭지 않다거나 아니면 유행을 탄다거나 낡은 전통에 매달려 있다고 말한다. 도대체 어떤 시를 쓰라는 말씀인가! 대안의 예를 제시해 주시든지….이렇게 투덜거릴 것이다. 심사위원 당사자들의 시나 글을 새삼 떠올리면서, 지적사항에 가장 많이 해당하는 자가 바로 당신이지 않은가! 그 원성이 들려온다(맞다! 모두가 선후에 서서 고투하는 자들일 뿐이다). 그럼에도 상투적인 심사평을 계속해서 늘어놓자면, 그럼 왜 그럴까. 새롭다고 느껴졌던 시가 바로 낡아지는 것을 볼 때가 흔하다. 유행을 타는 시다.
평론가들이 많이 언급하는 시인이 고전이 되는 것으로 착각한 소치이다. 젊은 문학도의 조급증은 눈앞의 물결을 수평선으로 착각하는 셈이다.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어온 낡디낡은 주문이 있다. 과연 스스로에게 시는 진실(眞實)과 진심(眞心)의 뗏목인가에 대한 되물음이다. ‘우선’ 그것이 아니어서야, 그것이 느껴지지 않아서야 이 하찮은 ‘언어 상태’는 어디에 기댈 것인가. 그 되물음이 깊고 익어서 ‘방법’을 낳고 ‘파괴’를 낳고 다시 익을 때 ‘개성’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엄밀히 신인에게 개성을 요구하기보다는 가능성을 요구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진실한 발성인가가 그 가능성의 초점일 수밖에 없다.

잘 쓴 분들로 삼십여 분이 넘어왔다. 그중 어렵지 않게 세 사람으로 압축이 되었는데 임경섭·조율·이우성 제씨가 그들이다. 모두 삶을 감싸 안으려는 생각의 두께가 다른 응모작들보다 치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율 씨의 시는 생활의 이면에 있는 풍경들을 촘촘히 살피고 선명하게 내면화하는 매혹이 있었다. ‘골목의 무릎’이며 ‘빨래방’ ‘세탁기’ 등의 제목이 말해주듯 거창하지 않은 세목들이 거뜬히 시가 되었는데 일정한 패턴화가 단점이었다. 이에 비해 이우성 씨의 시들은 훨씬 언어미학적으로 경쾌한 맛이 있었다. ‘어쩜 풍경이 멈춰 있다고 생각했을까’ ‘평생 먹을 수 있는 잎사귀가 정해져 있다면’ 같은 시는 군데군데 알 수 없는 이미지의 돌출이 걸리긴 해도 삶의 풍경을 파악하는 감각이 새롭다고 보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전체 응모작이 한 작품을 잘라 나열한 것이라 해도 될 만큼 각 작품에 초점이 모아지지 않았고 뒤쪽에 배열한 소품들은 서툴렀다. 가령 ‘오후의 냄새를 떠올리는 내일의 분주함’같은 구절은 치명적이다.

임경섭 씨가 당선자가 되었다. 잘 썼다. 응모한 여섯 편의 시가 모두 고르다는 데 우선 점수가 주어졌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초점을 잃지 않고 삶 전체를 향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말이 세련되지 않은 것은 장점이자 단점인데 진지하고 끈덕진 면으로 보면 장점이고 필요 이상 시가 길어져서 여운을 빼앗는 점에서 단점이다. ‘잘 썼다’는 것은 오래 습작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뜻인데 그것이 자신을 묶고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 주길 바란다. 이, 외진 오솔길에 들어선 것을 축하한다.

위 언급한 외에 유병록·김상혁·남민영·이해강 씨의 시들이 아까웠으며 더불어 결심에 오른 모든 작품은 심사위원이 진면목을 알아보지 못한 좋은 시들임을 잊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심사위원]

 

 나희덕·장석남

 

[예심위원]

 

강정·김선우·권혁웅

시 임경섭 / 소설 김성중 / 평론 이학영

 

창간 43주년 중앙 신인문학상

제9회 중앙 신인문학상 당선자가 결정됐다. 올해도 중앙 신인문학상 담당자 앞으로 5000편이 넘는 응모작이 쇄도했다. 분야별 예심과 본심으로 이뤄진 엄정한 심사 과정을 통해 시인과 소설가·문학평론가가 탄생했다. 중앙 신인문학상 당선자는 등단의 영예와 함께 각각 1000만원(단편소설 부문), 500만원(시·평론 부문)의 상금을 받는다. 시상식은 다음달 24일 서울 상공회의소 대회의실에서 미당·황순원문학상 시상식과 함께 열린다. 중앙일보 창간 기념으로 진행되는 중앙 신인문학상은 LG그룹과 중앙m&b가 후원한다. 아래는 당선자 명단.

시:임경섭 ‘진열장의 내력’

소설:김성중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

평론:이학영 ‘물의 에피파니 혹은 심연의 자화상-한강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