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종이우산의 앙냥냥 월드>님의 카페에서
고양이 짐보 / 황병승
내가 갸르릉 거리면요, 딴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요
내 이름은 짐보 나쁜 친구들과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아요 쥐는
옛날부터 싫었구요 이 골목은 누구보다 제가 잘 알죠
세탁소집 아이는 미용사가 꿈이구요 열여덟에 결혼한 수리공 마키는
말할 때 눈을 찡긋거리는 버릇이 있고 대장장이 키다리는
아침부터 술이지요
내가 밤늦도록 갸르릉 거리면요,
당신이 천방지축 꼬마였을 때 내가 아프게 할퀸 적이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요 딴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시답잖은 얘기예요 고양이에게 왕국이니 전설이니……
당신들 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뿐 내 이름은 짐보
지붕을 뛰어넘다 애꾸가 되었구요 동네 고양이들은 나를 점프왕 짐보
그렇게 놀리더군요 나쁜 마음을 먹을라치면 벌써 먹었죠
우리 고양이들은 칼날 같으니까요
그러나 눈이 꼭 두 개일 필요 있나요 친구들은 이 마을 저 마을
들쑤시고 다니지 못해 안달을 하지만, 많이 안다고 다 아는 건 아니죠 내 이름은 그냥 짐보 이 골목만큼은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죠
내가 만일 밤늦도록 갸르릉 거리면요,
당신은 아직 꼬마고 당신은 울고 싶은 일이 참 많고
그러나 그 모든 게 지난 밤, 짐보가 할퀴고 간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당신들 보다 나이를 조금 더 먹었을 뿐
딴 뜻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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