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수필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조세희

자크라캉 2008. 2. 19. 13:10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요약]

 

1970년대 산업화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의 참상을 우화적으로 그린 조세희의 연작소설.

 

저자 조세희
장르 소설
발표 《문학과 지성》(1976, 겨울호)
수상 제13회 동인문학상(1979)

 

[본문]

 

제13회 동인문학상 수상 작품으로 《문학과 지성》 1976년 겨울호에 발표되었다. 장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2편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작소설로 도시 빈민의 가난한 삶과 처참한 패배의 한을 다루고 있다. 전편의 구성은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여행》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육교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도시》 《은강노동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로 되어 있는데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네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고 상황이나 말들이 연상 고리가 되어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어 난해한데도 발표 이후 문단과 독자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아왔다. 이는 1970년대 산업화로 황폐해진 하층민의 삶을 이해하고자 한 학생운동노동운동의 성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최근 조세희는 작품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 소설의 구조가 문학적인 성과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된 1970년대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아버지가 난장이인 한 가족의 이야기가 큰아들 영수(1장), 작은아들 영호(2장), 딸 영희(3장)의 눈을 통해 전개된다. 행복동에서 지옥같은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의 안식처였던 집에 철거계고장이 날아든다. 분노하면서도 당하고마는 우리는 어쩔수가 없다. 어머니는 세든 사람에게 내어 줄 돈을 빌린다. 평생 고생만 하던 아버지는 삼층집의 가정교사인 지섭이 준 책을 읽으며 달나라로 떠나고 싶어한다. 기력이 쇠해진 아버지를 대신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우리는 모두 공장에 다녀야 한다. 공장의 환경은 엉망이지만 해고가 무서워 아무도 대항하지 못한다. 부자 사내에게 입주권이 팔리고 영희가 없어진다. 영희는 입주권을 산 사내에게 고용되어 동거를 시작하고 금고에서 입주권을 꺼내서 집으로 간신히 돌아오지만 아버지가 굴뚝에서 떨어져 죽은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소설은 도시화로 벼랑으로 몰리는 최하층민의 처참한 생활상과 노동환경, 주거문제, 노동운동의 한 에피소드 등이 여러 가지 상징적인 언어로 담겨져 있다. 난장이로 표현된 아버지의 존재는 이 소설의 주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착한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라면 달나라로 떠나야 한다는 지섭의 말에 동조하는 아버지는 현실에서 달나라로 비상하기 위해 굴뚝에 올라갔다가 결국 죽고 만다. 이 소설이 1980년대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텍스트로 이용되었다는 것은 난해한 문학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사회 병리현상과 도시 빈민의 사회학적 기록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세희는 1942년 경기도 가평에서 태어나 1965년 경향신문에 《돛대 없는 장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10년 동안 작품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난장이 연작을 통해 작가로서 명망을 얻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1976년 '문학과 지성'에 발표된 이 작품은 같은 제목의 연작 12편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중편 소설이다. 1970년대 한국 소설이 거둔 중요한 결실로 평가되는 작품으로서, 전혀 낙원이 아니고 행복도 없는 󰡐�낙원동 행복동󰡑� 소외 계층을 대표하는 󰡐�난쟁이󰡑� 일가의 삶을 통해 화려한 도시 재개발 뒤에 숨은 소시민들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핵심정리]

 

• 갈래 : 중편 소설

• 배경 : 1970년대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1, 2, 3부가 각각 영수, 영호, 영희의 시점에서 서술됨)

• 경향 : 사회 고발적

• 주제 : 땅에 대한 농민들의 애착과 강렬한 민족 의식, 자주 의식


• 등장인물

  아버지 : 변주리 생활로 전전. 삶의 절망 끝에 공장 굴뚝 위에서 󰡐�달나라󰡑�를 향해 종이 비행기를 날리고 작은 쇠공을 쏘아 올리다 추락사한다.

  어머니 :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어렵게 가계를 꾸려 나간다.

  큰아들(영수) : 공장을 전전하다 노동 운동에 뛰어든다.

  둘째 아들(영호) : 노동자. 은강 전기 회사에서 연마(硏磨) 일을 한다.

  딸(영희) : 온갖 궂은 직업을 경험한다.


 

 


[소설의 흐름]


1-1.

난쟁이를 아버지로 둔 우리 가족은 지옥과 같이 살아간다. 드디어 철거 계고장이 오고 말았다. 동사무소 앞에는 항의를 하는 주민과 거간꾼들로 가득했다.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호, 영희와 함께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어머니는 대문에 붙은 표찰을 뗀다. 별 수 없는 것이다. 영호와 영희는 분노한다. 나는 어쩔 수 없다고 낙담한다.

1-2.

아버지가 계고장을 마루 끝에 놓고 책을 읽는다. 아버지는 고생을 많이 했다. 아니 조상 대대로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인쇄 공장에서 일할 때 노비 매매문서가 적힌 원고를 조판한 적이 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선조들도 천민으로서 세습하여 신역을 바쳤다. 아버지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1-3.

옆집 명희 어머니로부터 돈을 빌린다. 우리 집에 세든 사람에게 내어 줄 돈이다. 그 돈은 예삿돈이 아니다. 명희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어머니는 말한다. 나도 그렇다.

1-4.

명희는 나를 좋아했었다. 어느 날, 명희는 나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면 제 몸을 만져도 좋다고 했다. 그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거였다. 만날 때마다 명희는 몸이 약해졌고 배가 고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먹고 싶은 것을 손가락으로 꼽았다. 명희는 이후 다방 종업원, 고속 버스 안내양, 캐디가 되었다. 배가 불러 있었고, 결국 자살했다. 남긴 통장에 십구만 원이 있었다. 그러나 명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중학교 3학년 초에 학교를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1-5.

아버지의 기력이 쇠잔해지고, 어머니와 나, 영호는 공장에 나가 일을 했다. 일은 고되었고 환경은 엉망이었다. 무슨 일이든 공부를 해야 이 구역을 벗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방송 통신고에 입학했다.

1-6.

아버지는 일이 힘들어 서커스단에서 하는 일을 바꾸고 싶어했다. 그러나 가족들은 반대했다. 아버지는 서커스를 하지도 않았는데 전에 그 일을 했다고 나에게 말했다. 정신이 이상해진 것이다.

1-7.

명희 어머니는 와서 입주권 값이 오르고 있으니 팔지 말라고 일러 준다.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를 찾아보라고 한다. 나는 아버지가 읽던 책을 보고 있던 중이다. 삼층집의 가정 교사인 지섭이 준 책이다. 아버지와 지섭은 통했다. 지섭은 이 땅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하며 달나라로 떠나야 한다고 아버지께 말씀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공장 굴뚝에 올라가  종이 비행기를 날리고 있었다.

2-1.

나(영호)는 우리 집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지 못했다. 영희가 집을 나간 바람에 밤새 찾아다녔던 것이다. 마을의 주정뱅이는 외계인을 따라 비행 접시를 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형이 힘없이 이리로 온다.

2-2.

형은 힘이 없이 나는 찾아왔었다. 우리는 함께 공장에서 일했다. 우리와 노동자들은 착취당했지만 해고가 무서워 아무 말도 못했다. 형은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형은 책을 많이 읽었다. 고민하는 표정을 늘 지었고, 공책에는 무엇을 옮겨 적었다. 지도자의 위선과 폭력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형을 이상주의자라 생각했다.

2-3.

며칠 전 동사무소 앞에서 입주권 시세를 알아보러 갔다가 영희를 만났다. 잠실까지 가서 입주권의  시세를 알아보고 온 것이다. 어떤 아주머니와 흥정이 결렬되었을 때 승용차 안에서 한 사내가 높은 금으로 흥정해 온다. 저녁에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2-4.

아버지는 우리를, 진실을 위하다 희생된 것이라 말했다. 형과 나는 사장과의 싸움에 졌던 것이다. 사장을 만나겠다는 얘기가 새어 나갔고, 공모했던 자들은 우리에게 냉담하였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다.

2-5.

저녁에 사내가 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돈을 건네 받았다.

2-6.

다음 날 명희네가 마을을 떠났다. 아버지는 손을 들어 전송했다. 아버지의 왼손에는 여전히 책이 들려 있었다.

2-7.

아버지와 지섭은 하루에도 몇 번씩 달을 왕복했다. 달에 가서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지섭이 미친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섭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나무라면서 지섭이 쇠공을 쏘아 올리는 걸 보여 주겠다고 했다.

2-8.

행복동 생활의 마지막 며칠은 악몽과 같았다. 영희를 찾을 길이 없었다. 지섭이 쇠고기를 사 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아버지와 말없이 책을 읽고 있다. 아버지에 의하면 지섭은 잘못없이 감옥에 갔다 왔다고 했다. 이 집에서의 마지막 식사다. 철거반원들이 우리의 식사를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짐을 챙겨 집 밖으로 나온다. 그들이 삽시간에 집을 허물어 버린다.

2-9.

갑자기 지섭이 철거반원들에게 항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주먹으로 그 한 사람의 면상을 때린다. 몰려온 반원들에 의해 지섭은 죽도록 맞는다. 그리고 그를 끌고 간다. 저만큼 멀어져 갈 때 아버지는 그들을 따라간다. 초라한 모습이다. 나는 잠이 쏟아져 부서진  대문짝을 깔고 잠든다. 꿈 속에서 영희가 팬지꽃을 공장 폐수에 던져 넣고 있었다.

3-1.

나(영희)는 밤을 새우고 있다. 거실의 시계가 네 시를 알린다. 나는 그에게 수면제를 쐰다.

3-2.

그는 철거 계고장이 오던 날, 동사무소 앞에서 나를 유심히 보았다. 매매 계약서를 쓰고 떠나면서 내 가슴 쪽을 살짝 건드렸다. 나는 그를 쫓아 나갔다. 나를 향해 그가 돌아섰을 때, 나는 그건 우리 집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것을 찾아야했다. 오빠는 우리 집을 짓는 데 천년 세월이 걸렸다고 했다. 그는 나를 고용했다.

3-3.

나는 그에게 고용되어 그의 아파트에서 동거하기 시작했다. 풍족하게 먹었지만 그 열량은 밤이 되면 고스란히 그가 되찾아 갔다. 그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3-4.

금고에서 우리 것을 꺼내어 밖으로 빠져 나온다. 새벽과 아침 시간을 보낸 후 동사무소, 구청, 주택 공사에 들러 필요한 수속을 밟는다. 그러고는 쓰러지려는 몸을 겨우 추슬러 신애 아주머니 집에 간신히 당도한다.

3-5.

아주머니와 딸이 나를 부축해 방에 누인다. 나는 아버지의 소식을 듣는다. 공장 굴뚝 속으로 떨어져 죽은 시체를 굴뚝을 헐다가 발견했다는 것이다. 나는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 울면서 큰오빠에게 말했었다.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하는 놈은 죽여야 된다고. 오빠는 꼭 죽이겠다고 말했었다. 꼭.

 

 

 

 [작품해설]


난해성 - 조세희의 실험 정신


연작 소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2편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뫼비우스의 띠>, <칼날>, <우주 여행>,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육교 위에서>, <궤도 회전>, <기계 도시>,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클라인 씨의 병>,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 <에필로그>가 그것인데 이들은 모순된 세계에 대한 비판을 주조로 한 작품들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지만, 같은 주제를 향해 있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이 연작의 네 번째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우선 난해하다.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서술되는데, 그것을 좀처럼 구분하기가 어렵다. 시간의 넘나듦은 상황이나 말들이 고리가 되어 자유 연상으로 전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주인공들이 복잡한 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삶 또한 마구 엉켜 있는 것을 드러내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 보인다. 위의 12편의 시리즈들에 관통하는 것도 상반된 세계에서 겪게 되는 갈등이다. 예컨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엄연한 구획과 같은 것이 상존하고 있으며, 이 모순된 상황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이 연작의 주인공들이 별다른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내면적 갈등이 주가 되기 때문에 그런 표현은 효과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서사 구조를 형성하는 에피소드들을 많이 갖추고 있지만, 그것들은 주인공들의 독백에 의존하면서 그 연상에 의해 넘나들고 있다.

시점에 있어서도 특이하다. 이 소설은 3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은 큰아들 영수, 2장은 작은아들 영호, 3장은 딸 영희의 눈으로 서술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실험 정신의 일단이라고 보여지지만 그것으로 인해 획득되는 문학적 성과는 커 보이지 않는다. 특히 3장의 경우, 영희가 그 동안의 사건을 요약해 주는 독백 형식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 많아 1, 2장의 소설적 긴장을 많이 해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시점의 변동 또한 이 소설을 어렵게 읽도록 하는 데 일조한다.


천국과 지옥의 대립 구조


이 소설의 구조는 두 세계의 대립이다. 즉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칭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천국󰡑�과 󰡐�지옥󰡑�으로 비유된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터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영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에서 피해자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선량하지만 힘이 없고, 그들은 부도덕해도 힘이 있다는 인식이다. 이 피해자 의식은 식구들에게 다른 각도로 드러난다. 나는 심각하게 사회의 모순을 직시하지만 대체로 내면화되어 있다. 영호는 분노로, 영희는 울음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어머니는 인내로, 아버지는 낭만적 초월 의식으로 그것에서 비켜나 있다.

영수는 이 가난과 불평등이 역사적인 것이라 믿는다. 인쇄 공장에서 조판을 하다 보게 된 노비 문서를 읽으며, 그 조상들 또한 최하층민이었고, 노비 제도가 사라진 뒤에도 실질적으로는 노비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씨종의 자식이었고, 그 자식인 자신도 그렇다는 것이다. 반상의 질서는 무너져도 빈부의 질서에 의해 변형된 형태로 노비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사회의 중심에 설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소외되어 있고 위축되어 있다.

이 왜소한 자아의 모습은 아버지가 󰡐�난쟁이󰡑�인 것으로 상징화되어 있다. 난쟁이인 신체적 왜소함을 뜻하기보다 사회적 신분의 왜소함을 의미한다. 이 불평등은 삶 자체를 부정하는 요소라고 인식한다. 나를 좋아했던 명희가 다방 종업원, 캐디 등의 일로 내동댕이쳐지고 남의 아이를 가지게 되며, 급기야 자살에 이르고 마는 것으로도 그것은 드러난다. 아버지가 이 땅을 떠나 달나라로 가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는 이 사람들이 살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이 불평등한 사회 구조는 삶 자체를 황폐케 하는 것이다.


난쟁이 아버지의 비상과 추락


아버지의 행동은 이 소설의 주제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아버지는 책 한 권을 늘 읽었는데, 그것은 지섭이란 지식 청년이 준 것이다. 지섭은 아버지에게, 열심히 일하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서도 삶이 이렇다면 이 땅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죽은 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이 땅을 떠나 달나라로 떠나야 한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지섭의 말에 공감하고 그 삶의 지표를 지섭이 설정한 것에 맞춘다. 따라서 지섭이 꿈꾸는 세계야말로 이 소설이 최종적으로 향해 있는 지점이 된다.

그러나 그 세계는 환상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점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을 암시한다. 앞에서 말한 모순 대립의 구조를 타파할 대안은 충돌과 같은 형식으로 표현되는 투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흔히 이런 문제를 다룬 소설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행동 양상은 투쟁과 같은 좌절이라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보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투쟁은 애초부터 성립하지 않는 조건이 되는 셈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원래 그렇다는 인식을 가질 때 그 절망은 극대화된다. 지섭은 결국 인간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이 󰡐�달나라󰡑�라는 환상적 공간으로 설정되었을 뿐이다. 물론 이 유토피아는 실현될 수 없다.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인물들에게서 우리는 더 큰 비극을 느낀다.


벽돌 공장의 높은 굴뚝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 맨 꼭대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바로 한 걸은 정도 앞에 달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는 피뢰침을 잡고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아버지는 종이 비행기를 날렸다.


종이 비행기는 아버지의 꿈이다. 고난의 이 땅에서 참다운 삶의 피안으로 향하는 순정한 꿈이다. 아버지는 가능한 한 가까이 피안으로 다가가기 위해 굴뚝 높은 곳에 오른다. 난쟁이에서 비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아버지는 그 굴뚝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의 비상은 곧 추락이었다. 세상은 비상을 용납하지 않고 철저히 추락만을 준다. 그것은 말할 수 없는 한으로 표상된다.


󰡒�큰오빠는 화도 안 나?󰡓�

󰡒�그치라니까.󰡓�

󰡒�아버지를 난쟁이라고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

󰡒�그래. 죽여 버릴게.󰡓�

󰡒�꼭 죽여.󰡓�

󰡒�그래. 꼭.󰡓�

󰡒�꼭.󰡓�


난쟁이로서 겪게 되는 소외된 삶의 통한이 이 마지막 대화로 극명히 노출된다. 신분적인 열등감에서 오는 한이면서, 난쟁이로 상징화된 서러운 자들의 고통의 표현이다. 인간의 삶은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이 땅에서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서 이 비극은 본질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어떤 대안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이 비극성의 철저한 인식 자체가 해결의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그의 소설이 엉거주춤한 주제를 남긴 채 종결되는 것도 이러한 세계 인식의 일단인지 모른다. 이 땅에서 아직도 난쟁이들은 굴뚝에 오르고 있다.

 

[핵심정리] 


갈래 : 단편소설                
배경 : 1970년대
경향 : 사회 고발적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1·2·3부가 각각 영수·영호·영희의 시점에서 서술됨)
주제 : 도시 빈민이 겪는 삶의 고통과 좌절

 

    [등장 인물]


 아버지 - 변두리 생활로 전전하다 삶의 절망 끝에 공장 굴뚝 위에서 '달나라'를 향해 종이 비행기를 날리고 작은 쇠공을 쏘아 올리다 추락사한다.
 어머니  - 노동 현장에 뛰어들어 어렵게 가계를 꾸려 나간다.
 큰아들 영수 - 공장을 다니다가 노동 운동에 뛰어든다.
 둘째 아들 영호 - 노동자. 전기 회상에서 일한다.
 딸 영희 - 온갖 궂은 직업을 경험한다.

 

[작가소개]


조세희(趙世熙) 1942 -    경기 가평에서 태어남. [경향신문]에 <돛대 없는 장선(葬船)>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나, 이후 작품 활동을 하지 않다가 1975년 [문학사상]에 <칼날>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이후 󰡐�난장이󰡑� 연작을 쓰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즐겨 읽었다고 했듯이 인간의 죄의 근원이 어디 있으며,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사회의 부조리는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검토를 한다. 그런 만큼 그의 작품은 기층 민중들의 애환이 매우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한편, 그 부정성을 드러내는 형식에 있어서의 세련됨과 서정적 문체는 그의 소설을 한결 힘있는 것으로 만든다. 비교적 과작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1970년대 산업 사회의 병리를 가장 예민하고 감동적으로 포착한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주요 작품에는 󰡐�난장이󰡑� 연작을 비롯해서 <나무 한 그루 서 있거라>, <모두 네 잎 토끼풀>, <모독>, <어린 왕자>, <하얀 저고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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