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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안동동부초등학교26회동기회>님들의 카페에서
[2008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대추나무 / 김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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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가 댕강거린다 부르터 울기 전에 내려놓으라는 말씀 사다리에 올라 볼이 탱탱한 편종에다 탐스런 눈을 맞춘다 햇살 살점에다 손을 대자 여름 내내 소리를 키운 종루가 먼저 부르르 떤다 뙤약볕과 별들이 촘촘히 박아 넣은 경전을 하나씩 받아 적으며 휘어진 하늘, 초록 귀때기 한 가지를 잡아 당겨 아직 새파란 소리 한 번 울려 보려는데 종일 텅 빈 가을을 들고 있던 바지랑대 들고 나오신, 가는 귀 먹은 어머니 너 그래 갖고 무슨 소린들 들리겠냐는 듯 꼬부라진 허리 곧추 세워 타종을 한다 한꺼번에 쏟아져 골목 흥건한 어머니 귀 뚫고 나온 저 소리 소쿠리 가득 담겨 들어간 대추 처마 끝 물구나무 서서 풍경 소리 댕강댕강 한 철을 날아간다
<당선소감>
부지러한 날갯짓으로 보답
새의 꼬리가 까맣게 점이 될 때까지 바라봤다. 바람이 데리고 가는 낙엽의 신발 끄는 소리에 귀를 세우고 잠 못 드는 밤이 오랜 습관이 되었다. 그랬다. 무엇이랄 것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생각에 골몰했던 나에게 답을 건네준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새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바람이 감나무 잎에 무엇을 쓰고 가는지 누군가 가르쳐 주었고 서투르게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새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미칠 때쯤 새와 한 몸이 되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 미흡한 시에 낙점을 찍어주신 심사위원님께 엎드려 감사드린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시로 보답하라는 말씀으로 새기고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겠다는 다짐을 드린다. 까막눈이었던 내게 시라는 영혼의 씨앗을 심어주신 이근식 선생님, 내가 나아가야 할 시의 지평이 얼마나 넓고 깊은지 손목 잡고 이끌어 주시는 경주대학교 손진은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항상 곁에서 격려하며 함께 공부하고 있는 아내 김광희 시인과 시가 뭔지는 모르지만 노환에 힘드신 부모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어 우선 좋다. 또 자기 일인 듯 기뻐해주며 함께 시밭을 일궈온 문우들 모두와 기쁨을 같이하고 싶다.
<약력>
- 1953년 경주 출생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졸업 - 2006년 근로자 문학상 수상 - 경주대학교 사회교육원 문예창작반 재학 중
<심사평>
청각적 은유 산뜻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등단 제도인 신춘문예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숱한 문학 지망생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 있는 소중한 원고를 정성을 들여가면서 하나씩 검토했다. 최종심에 올려진 작품은 모두 다섯 편이었다. ‘순장 소년’과 ‘하포· 1’은 우선 독특한 글감이어서 눈길이 갔다. 호흡이나 짜임새, 또한 조사법(措辭法)에 있어서도 안정감과 신뢰를 담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의 흐름이 느리고, 표현의 긴장감은 부족하고, 사유의 내적 깊이도 적어 보였다. ‘입관’은 삶과 죽음의 화해로운 인간미를 다사롭게 제시하고 있지만 귀하지 아니한 시적 정조 속에 매몰되어 있는 감이 있다. 기저가 되는 듯한 정서의 세계인 ‘그리움’이란 시어가 세 차례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그것을 도리어 희석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물 위의 지은 집’과 ‘대추나무’가 남았다. ‘물 위의 지은 집’은 작자의 역량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호흡의 길고 짧음을 서로 어울리게 잘 다루고 있다. 뭔가 새로움을 환기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행간에 감추어진 감수성도 있다. 그러나 모호하거나 진부한 어휘 선택, 눈을 거슬리게 하는 외래어들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더욱이 마지막 행이 결정적인 결함이라는 데 심사위원 모두가 동의했다. ‘대추나무’는 수작의 절대 조건에 적합하다기보다 결함이 비교적 적다는 점에서 일찌감치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몇몇의 사소한 결함을 수정한다면 신춘문예 당선시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시의 공력(功力)을 짐작케 하는 긴축적인 느낌도 당선작으로 미는 데 일조했다. 대추를 편종으로 은유한 것은 작위적인 것의 소산인 동시에, 사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제시한 청각적인 은유의 가능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 당선작이 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귀결이다. 당선자의 정진과 건필을 빌면서, 더 혹독한 자기 수련이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광석(시인)·박태일(시인·경남대 교수)·송희복(평론가·진주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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