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

밧줄/ 이수명

자크라캉 2007. 10. 18. 11:14

 

사진<서상우와 한국화>님의 블로그에서

 

/ 이수명

 

어느 날 건물  아래로  밧줄이  드리워지고 사람들이  하나씩  건물을

빠져나갔다. 밧줄은 아주 오래 매달려 있었다. 가느다란 외줄이 부르

르  떨고  있는  것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그 후 그 건물이 완전히

철거되었을 때 밧줄은 사라졌다. 더 이상 밧줄을 타고 내려갔던 사람

들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 그 밧줄에  매달려 있는 것을  날마다  보았다. 움

직이지도 않고 딱정벌레처럼 등을 웅크린 채 그는 허공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이 건물 저 건물에 그 밧줄을 번갈아 걸었다.

밧줄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짧아졌다.

 

어느 날 새로 불켜진 창에서 한 사람이 떨어졌다

 

 

<이수명>

- 1965년 서울 출생

- 1994년 『작가세계』로 등단

-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 현대 동대학원 박사과정

- 시집: <새로운 오독이 거리를 메웠다>, <왜가리는 왜가리 놀이를 한다>,

          < 붉은 담장의 커브>, <고양이 비디오를 보는 고양이> 등

- 2001년 <박인환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