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보르헤스의 책장/ 정영숙

자크라캉 2007. 10. 17. 14:53

 

 

                                  사진<DANIEL LOVE CAFE>님의 카페에서

 

르헤스의 책장 / 정영숙

나는 가끔 보르헤스의 서재에 놀러가곤 하지요
그의 얼굴을 찾기위해 나는
그가 펼쳐놓은 책장 속
포도덩굴 늘어진 문장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첫째줄에 기대다보니 어느 책에선가 한번 가 보았던 곳
햇빛 쏟아지는 투르판의 포도밭에 서 있군요
그의 포도밭은 넓고도 깊어
포도나무들 줄지어선 행간에서
나는 그만 길을 잃고맙니다
정오의 눈아린 태양빛에
포도덩굴 늘어진 문장을 헤치고 탐스런 포도송이들이
새벽달처럼 떠오르네요
나는 흐릿한 달빛 속에서
중심을 잃고 기우뚱거립니다
세계의 중심을 찾지 못하고 책장만 마구 넘깁니다
페이지마다 모래처럼 흩어지는 문장들
그 행간에 서서 헤매는 내게
그는 포도넝쿨 속에 숨겨놓았던 세계의 중심인 사전
그 속의 잘 익은 포도알을 따서 내 입에 넣어줍니다
달짝지근하면서도 아릿한 맛
어느 책에선가 내 눈으로 맛보며 즐겼던 단어들
나는 달빛에 비친 말간 포도알에서
궁금했던 그의 얼굴, 어디선가 만나본 듯한
그의 얼굴을 찾아내고 미소짓습니다
보르헤스의 포도밭에서 재미있게 놀다나오니
투르판의 햇빛 먹은 말들이 상형문자처럼
내 흰 옷에 새겨져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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