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시인

[스크랩] 오감도 -이상

자크라캉 2007. 8. 24. 13:20

오감도시 제1호

 

13인의   아해(兒孩)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적당하오)

제 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 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시 해석-

이 시는 한편의 영화, 특히 공포영화의 세트처럼 구성되어 있다.

첫 연에서 시인은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하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곧 이어 괄호 속에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다는 해설을 집어넣고 있다.

다음 연에서 시인은 제 1의 아해부터 제 13의 아해까지 차례로 나열하면서 무섭다고 한다고 말하며 다시 괄호 속에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라는 말을 집어넣어 하나의 장면을 완성시키고 있다.
그 다음부터 마지막까지는 처음에 제시한 상황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처음에 시인은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는 상황을 제시했지만

이 상황은 마지막 행에서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 좋소"라는

마지막 행에 의해 부정된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는 2행 역시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라는 구절에 의해 부정된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 그렇게뿐이모였소"라는

구절은 앞서 "무섭다고 그리오"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무섭다고 그리오"가 "무서워하는"과 "무서운"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아무 의미도 제공하지 않는다.

 또 그 다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에서 "무서운", "무서워하는"의 구분 자체가 별 의미 없는 것임을 드러내준다.

또 "1인의아해가...라도좋소

/ 2인의아해가...라도좋소"에 의해 1인, 2인, 3인 나아가 13인 모두라도 상관이 없으며

따라서 13이란 숫자마저 특별한 의미가 없음을 보여준다.

모든 아이가 무서운 아니라도 좋으며 무서워하는 아이라도 좋다는 뜻이다. 일부 연구자들이 13인의 13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태도는 이런 점에서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이 시는 무엇인가 제시해놓고 그것을 차례로 부정함으로써 처음 제시했던 장면을 무화시키는 방식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시는 아무 것도 의미하는 바가 없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시는 분명히 처음 제시한 상황을 부정하고 있지만 부정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섭다고 그리오"의 공포감이다.
시인은 공포감을 제시하기 위해 처음부터 치밀한 전략을 가지고 세트를 짜고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그 공포감이 특정한 대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 절대적인 공포감, 절대적인 존재의 위기감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즉 이 시에서 세트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장치일 뿐이지 세트 자체가 이상이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은 아닌 것이다. 이상은 독자들이 세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것을 걱정하여 그것을 제거시키는 친절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라"는 첫 장면에서 눈치 빠른 독자는 공포감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시인은 친절하게 괄호 속에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라는 구절을 넣음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고 하고 있다. 괄호 속의 대사는 지문 형식을 갖는 것이다. 그 다음 시인은 제 1부터 제 13까지 숫자를 하나씩 나열함으로써 아이들이 한꺼번에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겁에 질려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씩 뛰어나오는 것처럼 인지시킴으로써 상황을 더욱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놓고 있다. 13인이 한꺼번에 달려가는 것보다 하나씩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장면 자체를 더욱 괴기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독자들은 이러한 나열을 통해 충분히 공포감을 이해하게 되겠지만 시인은 다시 한번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 그렇게뿐이모였소라/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는 말을 덧붙임으로써 세트를 완결짓고 지금까지의 상황이 공포감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 다음에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 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라는 구절은 다시 처음에 제시했던 상황에 대한 부정이다.

결국 이 시 전체에서 처음에 의도적으로 제시되었던 세트들은 모두 부정되고 공포감만이 남게 된다.
이상이 이 같은 세트를 연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시에서 제시되는 공포감을 절대적인 공포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판단된다.
이상이 살던 시대는 식민지 시대이다.

식민지 시대 모든 인간적인 가치와 실존적 자유는 박탈된다.

모더니스트 예술가로서 20세기 서구적 자유와 개성을 추구하는 청년 시인 이상에게 당시 봉건적 질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청년 이상에게 식민지적 가치와 제도, 그리고 19세기적 봉건적 윤리, 질서는 진정한 가치로 생각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가치와 질서 속에서 이상의 자아는 질식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와 배치되는 현실 앞에서 이상은 마치 낯선 이방 에 온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상 세계는 이상에게 무감각하고 차가운 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이상은 세계를 벗어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죽음처럼 무감각하고 무의미한 세계 속에 홀로 내던져진 존재로서 이상은 맞지 않는 옷을 걸치고 절름발이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느끼는 순간 공포감으로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오감도라는 제목도 그러한 죽음의 세계를 그려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볼 수 있다.

이상에게 이 세계는 고독한 까마귀가 바라본 세상,죽음의 세계  였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까마귀처럼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유재천의 문화교실http://nongae.gsnu.ac.kr/~jcyoo/중에서

출처 : 인생은 사악한농담이다.
글쓴이 : Noir pierrot 원글보기
메모 :

 

 

 

'이 상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日月 / 이승훈  (0) 2008.07.10
오감도시 제1호  (0) 2007.08.25
명경(明鏡) / 李箱  (0) 2007.07.03
건축무한육면각체/ 李箱  (0) 2007.07.03
절벽 / 이상  (0) 2007.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