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마르가리따 / 미하일 불까꼬프
미하일
불까꼬프/ 『악마와 마르가리따』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 내부의
현실
류수안
“그럼 결국 당신은 누구요?”
“나는 영원히 악하고 싶지만 영원히 선을 행하게 되는 그
힘의 분신이오.”
―괴테 『파우스트』에서
1891년 신학 교수의 아들로 태어난 미하일 불까꼬프는 본래 고향인 끼예프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고 있던 의사였다. 평범한 의사에 불과했던 그가 소설가로 변신한 것은 1919년 늦가을 여행중인 간이 열차 안에서 그 자신조차
어찌할 수 없는 내부의 욕구에 의해 최초의 단편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렇게 하여 의사에서 소설가로 탈바꿈한 불까꼬프는 소설 시작 3년만인
1924년 드디어 첫 장편인 『백위군』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잡지 『러시아』에 제1부와 2부가 실리기 시작한 이 소설은 그러나 소련 당국의 문예
정책에 반한다는 이유로 연재가 중단되면서 출판도 되지 못하는 비운을 맞고 만다. 생계를 위하여 갖가지 신문의 편집에 종사하며 모스크바를 떠돌고
있던 불까꼬프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하여 「치치코프의 편력」 「개의 심장」 「운명의 알」 등을 발표한다. 체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도 했던
「백위군」을 극화한 「뚜르빈씨네의 하루하루」가 모스크바 극장에서 성공을 거두자 연극에 흥미를 느낀 그는 이후 30여 편의 희곡을 쓴다. 단 몇
차례의 공연만에 상연이 중지당한 「몰리에르」를 마지막으로, 소련 사회를 비판한 반동 작가란 낙인과 함께 침묵을 강요당하자 다시 소설로 방향을
바꾼다. 1930년대 들어 작가들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가중되어 가면서 불까꼬프는 작품 발표의 기회마저 빼앗기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존립의 위기에 이르러 간다. 작자 불까꼬프의 대표작이면서 잊혀져 있던 그를 다시 소련 문단에 부상시킨 이 소설 「악마와
마르가리따」는 바로 이때 씌어진 불까꼬프의 마지막 소설이다.
문단에서 매장당한 채 책의 출판마저 금지당한 그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유작이다. 작자 불까꼬프는 자신의 전 내부를 쏟아 넣은 이 소설에 또 다른 불까꼬프를 등장시켜 자신이 맞대면하고 있는 죽음에 대해 말하려 한다.
죽음과 맞대면하고 있는 자의 시선을 빌어 인간 고유의 명제인 선과 악을 탐구해 들어가려 한다.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인간 내부의 현실에 대해,
세계의 무엇이 죽어가고 있는 그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어떤 관념이 그 인간과 동행해 가고 있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이 소설을 통하여
드러난 대로라면 현재 그 인간의 내부에는 큰 혼란이 소용돌이치고 있다. 시공간은 파괴되어 있고 현실과 비현실 또한 난마처럼 뒤엉켜
있다.
작자 불까꼬프는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간 이 인간의 내부를 사실적으로 표현해 내기 위해 소설 사이사이에 또다른 소설을 중첩시킨다.
환상과 꿈, 사실의 뒤범벅인 인간의 의식을 입체화·다면화시켜 보여준다. 전체 2부 30장으로 죽음을 앞에 둔 인간 내부의 착란을
환상적·사실적·철학적 요소들을 결합하여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듯 극명히 드러내 보인 소설의 줄거리를 편의상 세 갈래로 나누어 요약해
본다.
1. 일명 거장(소설가)과 마르가리따
복권 당첨으로 생애 처음 자신만의 공간을 갖게 된 소설가는 어느 날 집과
가까운 골목에서 노란 꽃을 들고 가는 마르가리따를 발견한다. 순간 자신의 전 생애가 앞서가고 있는 여자를 위해 있어온 것임을 직감한 소설가는 곧
노란 꽃의 여자를 뒤따라간다. 촉망받는 과학자의 아내인 마르가리따 역시 소설가와 같은 감정을 느낀다. 소설가가 집필중인 「본디오 빌라도」에 작자
못지 않은 애정과 기대를 갖는다. 그러나 완성시킨 소설은 출판사마다 거절을 당한다. 평자들에게서조차 혹평을 받는다. 이에 충격을 받은 소설가는
자신의 소설을 소각한다. 자살하려 철로변으로 간다. 실행 직전 두려움으로 실패한 그는 곧 정신병원으로 후송된다. 돌연한 소설가의 증발과 소설
소각으로 인한 절망에 빠져 있던 마르가리따 앞에 검은 마술사 볼란도의 일행인 검은 고양이 일당이 나타난다. 소설가를 만나기 위하여 기꺼이
악마들의 무도회에 여주인으로의 참석을 승낙한 마르가리따는 마술사가 보낸 크림을 바름으로써 투명 인간이 된다. 빗자루를 타고 몇 개의 강과
산기슭을 지난 마르가리따는 드디어 무도회 장소인 모스끄바의 한 아파트에 당도한다. 이때 정신 병원에 감금되어 있던 소설가는 악의 상징인 마술사
볼란도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정신병자로 몰린 옆방의 시인에게, 자신이 쓴 소설 「본디오 빌라도」에 관한 것과 마르가리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시체들이 벽시계 속에서 나와 본래의 모습을 회복해 가는 가운데 무도회는 차질 없이 진행되어 간다. 무도회의
주최자이며 자신을 초대한 당사자이기도 한 볼란도에게서 해골에 들어 있는 술을 받아 마신 마르가리따는 눈앞의 사람들이 다시 시체가 되어가는 것을
보면서 정신을 잃는다. 보석상 여자의 방에서 눈을 뜬 마르가리따는 단 한 가지의 소원만을 말하라는 볼란도의 말에 소설가를 만나게 해 달라
요청한다.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던 소설가를 만난 마르가리따는 볼란도에게서 오래 전 재로 사라진 소설 「본디오 빌라도」를 돌려받는다. 예전 유대
총독이 마시던 포도주를 마신 이들은 옆방의 시인에게 미완성의 소설을 완성시켜 달라는 부탁을 한 후, 볼란도가 가리키는 길을 따라 책과 더불어
영원의 집을 향해 출발한다.
2. 검은 마술사 볼란도
오월 초저녁, 각 인종의 특색을 혼합해 만든 듯한 얼굴의 마술사
볼란도는 공원 벤치에 앉아 예수에 관한 토론을 벌이고 있는 문학지 편집장과 시인에게로 간다. 예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자신 또한 부정해
버리는 이들에게 볼란도는 한 시간 후면 어느 청소부 여자가 흘린 해바라기 씨의 기름에 의해 편집장이 달리는 전차에 목이 잘려 죽게 될 것이라
말한다. 예언대로 죽어버린 편집장에게 놀라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는 시인을 뒤로 하고, 그는 여자 보석상 소유의 아파트로 돌아온다. 극장에
관계하고 있던 사람들이 차례로 실종되어가는 가운데 열린 모스크바 극장에서의 마술쇼에서 사회자의 목을 떼었다 붙여 놓았다 하는 마술을 선보인
볼란도는, 위조지폐를 객석에 뿌려 극장 안을 혼란에 빠뜨린다. 관람 왔던 여자들을 벌거벗겨 거리를 활보하게 한다.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이기도한 그는 연인을 잃고 절망에 빠져 있는 마르가리따를 매년 개최되는 악마들의 무도회에 초대한다. 자신의 존재를 단지 환각의 산물이라
여기고 있는 소설가에게 소각시켜 버렸던 원고를 찾아내 되돌려준다. 실종되어 버린 극단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볼란도는 소설가와
마르가리따와 더불어 모스크바를 떠난다. 작가 회관의 화재로 불멸의 작가들이 한줌의 재가 되어 버리는 가운데 뇌우가 치는 하늘을 날아 산봉우리에
오른다. 이곳에서 왕의 아들이며 제5대 유대 총독인 볼란도는 또다시 심연 속으로 떨어져 모습을 감춘다.
3. 소설 속의 소설
「본디오 빌라도」
춘월 이사안 14일 아침, 유대 총독 빌라도는 헤로데 왕의 궁전 발코니에 앉아 있다. 엄습하는 편두통으로 우울해
있다. 그러한 그의 앞에 사형이 선고된 네 명의 명단이 적힌 양피를 든 서기가 나타난다. 이윽고 민중을 선동하여 궁전을 파괴하려 했다는 죄목의
예슈아 하노츠리가 빌라도 앞에 선다. 몇 푼의 은화에 팔린 가리옷 유다의 밀고로 잡혀 들어온 에슈아는 빌라도에게 세상에 약한 사람은 없으며
자신을 밀고한 유다조차 선량한 사람이라 말한다. 이에 격분한 빌라도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으니 석방해 달라는 예슈아의 요청을 거절한다. 드디어
로마로부터 바라빠를 제외한 세 명의 사형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온다. 순간 빌라도는 자신의 내부로 불멸,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어떤 것이
온 것을 느낀다. 오전 열시 반 군대를 이끌고 성 밖을 시찰하던 빌라도는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가고 있는 예슈아 일행과 맞닥뜨린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솟아오르는 먼지를 막으려 손으로 얼굴을 가린 빌라도는 재빨리 이들 일행으로부터 뒤돌아선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사형이 집행된
예슈아의 시체는 갑작스런 병으로 처형장에 올 수 없었던 마테오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 편두통과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데 대한 분노로
예슈아를 죽음에 이르게 한 빌라도는, 심복인 백인 대장에게 유다의 살해를 명령한다. 빼어난 미모의 소유자인 유다는 곧 다른 사람의 아내이면서
정부인 여자에 의해 밖으로 불려내진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만나자는 여자와의 약속으로 그곳을 향해 가던 유다는 두 명의 칼잡이에 의해 살해된다.
빌라도는 예슈아의 시체를 옮긴 마테오와 만나, 그에게 자신이 유다를 살해했음을 말한다. 마테오로부터 예슈아의 말이 적혀 있는 양피지를 받아 든
빌라도는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어제 우리들은 달콤한 과일을 먹었다. 우리들은 맑은 강 생명의 물을 본 것이다……인류는 투명한 수정을 통하여
태양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의 글을 읽는다. 이제 그 어떤 달빛 아래서도 평안을 얻지 못할 것임을 직감한 빌라도는 전율한다.
빌라도로부터 깨끗한 양피지 한 장을 얻은 마테오가 떠나고 그 다음날인 이사안 15일, 유대 총독 빌라도는 심연으로 떨어져
내린다.
꿈을 꾸고 다시 그 꿈에서 깨어나면서 주변 사물을 바라보던 인간은 문득 그 자신 절대적인 우주에 홀로 내던져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꿈을 꾸기 전까지는 익숙했던 사물들이 꿈을 깬 지금은 어찌된 일인지 외계의 무엇만큼이나 낯설어 보이는 것을 느낀다.
그제서야 그
인간은 자신은 지금 어떤 신비롭고 어두운 미궁에 갇혀 있으며 출구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한 자루의 촛불의 빛이 청년
불까꼬프에게 펼쳐 보인 이 신비로운 미궁은 곧 그를 이끌어 미궁 속의 불가사의한 세계로 들어간다. 빛과 그늘, 선과 악이라는 양분된 세계 속으로
옮겨 놓는다. 이러한 경로를 거쳐 자신의 내면이라는 미궁 속으로 들어간 불까꼬프에 의해 탄생된 소설 「악마와 마르가리따」에는 작자 불까꼬프가 본
어쩔 수 없는 양분된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고뇌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소
설을 이끌어가는 네 명의 주인공들 중 맨 마지막까지 남게
되는 시인을 보면 그는 어느 날 단순히 악을 부정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옆방에 수용되어 있던 소설가의 내방으로 그 동안 자신이
써 왔던 작품들이 단순한 자연의 모방에 불과했던 것을 알아차린 그는 이후 단 한 줄의 시도 쓰지 못하는 역사학 교수가 되어 버린다. 그러함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으로 하여 미구에 태어나게 될지도 모를 걸작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오래 전의 저 본디오 빌라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만월
때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시를 쓰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틀림없이 걸작을 쓰게 될 시인으로서의 환상에 끼어 병자가 되어 간다.
악 자체를
부정한 또다른 한 사람 예슈아 하노리츠는 어떤가. 그는 근본적으로 악은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그의 이러한 믿음조차 허용하지 못하는 척박한 세계이다. 집 없는 떠돌이인 예슈아는 곧 세계에 의해 처형대에 세워진다. 처형되어 사라짐으로
하여 그 자신은 불멸의 생명을 얻는다. 자신이 부정했던 악의 내부에 죽음과 갈등의 씨앗을 떨어뜨린다. 이들 중 유일하게 악을 믿고 있는 빌라도는
어느 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군중 선동가인 예슈아의 사형에 서명을 해야 하는 운명을 맞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이제껏 그가 누려
왔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다. 처형장으로 사라진 예슈아가 그의 어깨에 자신이 짊어지고 간 십자가 보다 더 무거운 영혼의 십자가를 얹어 놓은
것이다. 신과 다름없는 자연, 절대적인 힘의 소유자에서 단번에 제5대 유대 총독으로 전락해 버린 볼란도는 그때부터 인간에 의해 씌어진 책을
되찾기 위하여 잿더미를 뒤진다. 한 쌍의 연인들을 여명으로 이끄는가 하면 만월의 밤마다 처형당한 예슈아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
이렇듯이
소설을 통하여 불까꼬프가 해부해 들어간 선과 악을 보면 그것은 단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에 다름 아닌 것으로, 신은 이것을 뛰어넘는 자유를
인간에게 부여해 놓고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소설의 등장 인물들처럼 선 또는 악에의 관념에 갇혀 들어가 답답하다, 나는 답답하다,고 외치고만
있다.
작자 사후 26년만에야 발간되어 무명이나 다름없던 그를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 소설엔, 이밖에도 죽음에까지
인간을 따라가는 관념들엔 어떤 것들이 있는가가 심도 있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밖에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진실에 관한 것이다. 이 소설을 쓸
당시의 불까꼬프를 반영한 듯한 소설속 시인의 행적을 보면 그는 단지 악의 존재를 부정했다는 이유로 목이 잘려지는 편집장을 목격하게 된다. 아무도
진실을 인정해 주지 않은 가운데 정신병자로까지 몰려 주변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되어 간다. 그러던 중 그는 옆방에 들어 있던 소설가의 내방을
받는다. 그가 썼다는 소설 「본디오 빌라도」의 주인공 빌라도가 자신이 보았던 볼란도인 것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배후인 심연을, 그것에 자리잡고 있는 미지의 세계를 느끼게 된 그는 점차 현실과 환상과의 구분을 잃어 간다. 이러한 시인의 내면을 빌어
불까꼬프는 진실을 외면한 세계와 주변의 인물들이 한 인간을 처절한 죽음의 세계로 몰아가고 있음을 말한다.
다음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진
것이 작자 불까꼬프가 갖고 있는 ‘집’에 대한 생각들이다. 가난과 질병 속에서 끊임없이 어두운 모스크바를 헤매었을 불까꼬프에게 집은 그저 단순한
주거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닌 탄생과 죽음의 근원이 되는 신성 불가침의 한 장소였던 모양이다. 창가에 라일락이 피어 있는 소설가의 집은 그에게
「본디오 빌라도」를 쓸 수 있는 거처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집은 지하의 음습함과 지상의 햇빛으로 탄생된 소설을 다시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소설 속의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화려한 헤롯왕의 궁전을 두고 발코니에서만 생활한다. 그에게 궁전 안은 그저 음모와 협잡의 장소밖에 되지
못한다. 이들에 비해 검은 마술사인 볼란도는 어두운 외딴집이 아닌 아파트에 살고 있다. 모스크바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 그 집에서 그는 무도회를
열기도 하고 사람들의 내방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 있는 생명들로 넘쳐 있는 이 집은 그에게 지하 세계에 대한 동경만을 키울 뿐이다.
이렇듯 소설 속의 등장 인물들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서로 다른 공간을 확보하여 살아간다. 때때로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그 공간에 대해
이질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과연 내 집인가, 내게 맞기는 한 집인가,라는 심각한 의문에 싸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또다시 새로운 공간을 찾아 나선다. 끊임없이 제 집을 찾아 헤맨다. 제 내부가 아니고서는 그 누구에게도 꿈은 불가능하겠기
때문이다.
이제 이 소설의 작자 불까꼬프는 새로운 집을 향한 출발점에 도달해 있다. 진실을 인정해 줄 단 한 명의 소설가를 기다리고
있다. 소줏병에 꽂아 놓았던 촛불 아래서 첫 단편을 썼던 그는 찾아와 줄 단 한 명의 소설가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현재 그의
내부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죽음이 저 너머에까지 그를 따라갈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어쩌면 그는 또다시 맞이하게 될 만월의
달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빛 가득한 허공을 향하여 함께 떠나지 못하여 놓쳐 버리고 만 비너스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중에도 그는
결코 자신의 내부를 놓치지 않으리라. 죽음과 맞대면하고 있는 단독자로서의 경악과 전율을 말하려 시도하리라. 마흔아홉의 나이로 삶을 마친 작자
불까꼬프는 마지막 시기에 씌어져 처음 소설에서 목적했을 선과 악 못지 않게 ‘집’에 대한 작자의 천착이 두드러졌던 이 소설의 말미에 그는
이제부터 자신이 찾아 가지게 될 어떤 집의 모형을 제시해 놓는다. 그가 이 소설을 빌어 그려 보인 그 집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했던 불까꼬프와
같은 자에게만이 겨우 주어질 수 있는 그러한 집이다. 죽음 저 너머에까지 인간을 따라가는 몇 안 되는 것 중의 하나일 그 ‘집’에 관한 것을,
불까꼬프는 모래 위에 서 있는 마르가리따가 소설가에게 설명해 보이는 대목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이것 보세요, 이 고요”
마르가리따가 거장에게 말했다. 모래가 그녀의 발 밑에서 소리를 냈다. ”잘 들어 보세요. 그리고 즐기세요. 당신의 인생에는 주어지지 않았던 이
정적을, 자 저기를 보세요. 저 앞쪽에 보이는 것이 상으로 주어진 당신의 영원한 집이에요. 베니스식 창문과 지붕까지 높이 뻗고 있는 포도 덩굴이
벌써 보여요. 나는 알고 있어요. 밤에 당신이 가장 사랑하고 있는 사람, 당신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은 당신을 위하여 연주를 할 것이고 촛불이 탈 때 방안은 참으로 밝을 거예요. 그 기름때 묻은 모자를 쓰고 당신은 잠을 잘 거예요. 잠은
당신을 강하게 해서 당신은 사물을 현명하게 판단하게 될 거예요. 나는 당신의 잠을 지키겠어요.”◑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