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개띠들의 자화상 - 심은섭
자크라캉
2020. 12. 25. 09:59
개띠들의 자화상
심은섭
도시가 1cm자란 새벽을 은장도로 잘라내고 있다
닭들이 죽어간다 꽃 속의 닭들도 팔월의 빙점에서 죽어간다 어떤 닭은 통금의 사이렌소리처럼 죽어가고 어떤 닭은 잉어비늘로 말라간다 끝내 깊이를 발설하지 않는 동굴처럼 살아가던 수탉은 월급봉투를 손에 쥐고 한 번 더 죽어간다
개띠들이 갈앉는다 신생대의 개띠들도 공룡들의 새벽을 기억하다 죽어간다 어떤 개띠는 허기의 임계점을 향해 걸어갔고, 어떤 개띠는 폐쇄된 간이역으로 귀화했다 나침판을 잃어버린 개띠는 비석을 세우고 한 번 더 각혈을 한다
낮달이 사라진다 푸른 지폐가 쏘아댄 예광탄을 맞고 순례 중인 낮달이 죽어간다 어떤 낮달은 신호등아래에서, 어떤 낮달은 허공에 펄럭이던 흰 깃발을 안고 죽어간다 몰락한 태양을 숭배하던 낮달은 수의를 한 겹 더 기워 입는다
늙은 느릅나무 아래로 연둣빛 무덤이 모여든다
-2020년 『시와세계』 겨울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