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시간의 얼굴.2-심은섭 시인
자크라캉
2020. 3. 24. 23:33
〈사진 : https://www.dispatch.co.kr/1048779〉에서 캡처
시간의 얼굴.2
심은섭
빈손의 승객들이 국적불명의 열차에 승차하고 있다
혀가 짧은 앵무새들은 그들이 북극에서 왔을 거라고 소곤댔다 일간지들은 열 시 방향에서 온다고 호외를 발행했다 이끼 낀 돌탑은 그들이 떼 지어 회전하며 손금 속으로 온다고 했으나 늙은 건축학과 교수는 직선으로 달려온다고 소리쳤다
시간의 열차가 요단강변역 플랫폼으로 들어선다 4호차 승객들은 도살장 황소 눈빛으로 주저앉아 있다 앳된 느티나무 한 그루와 말복에 실종된 삽살개도 보인다 흰 머리카락의 당나귀들은 편자를 벗어놓고 일찍 북천을 응시하고 있다
발자국도 없이 달려온 그들은 망각의 강에 다다랐다 푸른 사주의 멧돼지는 완강하게 승차를 거부한다 스무 살쯤 내가 잃어버린 아버지의 초상화가 8호차에 실려 있다 어머니는 아직도 저녁노을을 머리에 이고 걷는 중이라고 누군가 일러주었다
승객 모두 풀이 덜 자란 빈 무덤 하나씩 안고 있다
*출처: 2020년 계간지 『시현실』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