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수배자 제6호-휴대폰 / 심은섭 시인
지명수배자 제6호
-휴대폰
심은섭
1
몸속엔 치안을 담당하는 관공서 하나 없다 달빛을 갈취하던 수전노의 영혼을 가둘 석실 한 칸도 보이지 않는다 몇 개의 꽃들은 신선한 음모가 가득하다는 의심만 쏟아내고 시들어간다 평소 적막을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던 말매미마저 하혈을 한다
2
방금 호텔을 빠져나온 구름떼들은 이토록 납작하고 보잘 것 없는 혁명가를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의처증의 도시가 손톱으로 화면을 긁어대자 혁명의 알갱이들이 쏟아졌다 해바라기는 의문의 부호로 태양과 교신 중이었고, 체 게바라는 침묵했다
3
열여덟 살 아프리카소녀는 그의 몸이 츄파춥스보다 달콤하다는 눈치다 마흔 살의 접시꽃은 그가 자신의 신앙이라며, 스스로 손바닥에 대못을 박고 순직을 선언했다 스티븐 잡스는 그가 황금어망을 던져 미래의 죽음을 건져 올릴 신이라고 소리쳤다
4
고독사를 해결해준다는 핑계로 저녁마다 외딴섬에 붉은 전파를 수혈한다 그럴수록 세상은 더 어두워지고 그의 몸속 푸른 영혼도 더욱 깜빡거렸다 그가 광맥이라고 단정하던 낯선 비애는 무분별하게 이성의 철교를 건너 아이들 뼛속에서 잠복 중이다
5
여전히 PC와 통신은 불륜을 저지르며 국적불명의 혼혈아를 낳고 있다 그때 TV에서 속보가 흘러나온다 ― 삐삐 한강 투신자살, ‘주의 기도문’ 외던 시티폰 암살 – 떠나가는 헌 유행가의 슬픔을 기억할 시간조차 없는 세상이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출처 : 2017년, 『현대시』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