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섭 시인 - 삼단조화
-사진<김시덕의 해피플라워>에서 캡처
http://blog.naver.com/2andy0412/60207882987
삼단조화
심은섭
장례식장 입구에 양다리를 뻗치고 그가 서 있다 그의 얼굴이 무언가를 아는 듯이 흰 국화꽃처럼 창백하다 나는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1단
살구꽃이 만발한 집 한 채가 보였다 바람의 몸 밖으로 웬 사내아이가 걸어 나와 빈 젖을 물고 툇마루에 누워 웃고 있다. 신명이 난 산제비들이 떼 지어 몰려와 문설주의 등불을 내걸었다 잔뼈가 다 자란 아이는 그림자를 안고 사막으로 떠났다
2단
그는 모래언덕에 신전을 짓기로 했다 니크롬선 햇살을 잘라 기둥을 세우고 뭉게구름 몇 장 떼어 지붕을 덮었다 담장은 적막을 단단하게 뭉쳐 쌓았다 창문은 허공을 마름꼴로 톱질하여 동쪽으로 달았다 가끔 영혼이 지친 흰꼬리모래여우가 쉬고 갈 암자도 지었다 황톳빛 담벼락에 ‘말구’*라는 문패를 달아놓고 가만히 눈을 감고 신전에 누웠다 마른 풀단 같은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3단
도착하는 날을 기억이라도 하듯 얼굴이 없는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다 날개가 달린 흰 말이 들고 있던 저울로 그의 전생을 달아 보았다 파르르 떨던 눈금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그때 어디선가 굵은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벽이 열리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통곡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엔 흰 눈이 그 사내가 걸어온 길을 지우고, 검은 상복들이 만가를 부르며 허공에 만장을 게양하고 있었다
*세레명 마르코
-계간지 〈동안〉 2016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