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당선작
[2011년 경인일보신춘문예 시당선작]-중세국어연습 혹은 그림/오다정
자크라캉
2011. 1. 7. 11:36
[2011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중세국어연습 혹은 그림 / 오다정
달력 뒷장을 읽는다
무심한 세월이 쓰고 간
투명한 글씨 위 아버지
長江 한 줄기 그리셨다
마킹펜이 지난 자리
푸른 물결 굽이굽이
배를 띄우랴
가보지 못한 세월 너머로
進進, 언덕으로 포구로
그 어디 너머로 進進
화면 가득 띄우고도 모자라
반 토막만 남겨진 배
돛대도 물결도 반 토막이
된 자리, 아버지 또 그리신다
정직한 삼각형
한· 두· 세· 네
넘어보자 했으나 넘지 못했던
능선 뾰족뾰족 이어진다
빨갛고 검은 日歷의 뒷면
연습 없어 미리 살지 못한 세월로
열 두 척 반, 배 떠간다
아버지, 그려내신 한 장 그림
소실의 문자 빼곡히 박힌
발음되지 않는 국어책 같다
[2011경인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안도현·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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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상징 적절히 조율된 수작… 앞으로 좋은 시인 되리라 확신
오다정씨의 '중세국어연습 혹은 그림'은 당선작으로 손색없는 시다.
이 분의 시에는 우선 어려운 말이 없다. 시에 어려운 말을 쓰면 정말 어려워진다. 그런데 본심에 올라온 시가 대개 그러한 시였다. 시는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삶을 노래하자는 것이므로 문장이 헛갈리거나 하면 그냥 놓아버리게 된다. 누가 끙끙거려가면서까지 시를 읽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있을 건 다 있다. 행과 행 사이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으며 사유의 도약은 읽는 사람을 화들짝 깨어나게 한다. 시와 산문의 구별점이 그것 아니겠는가.
당선작은 은유와 상징, 환상, 그리고 우리네 생활이 적절히 조율된 수작이라 할 만하다. 가령 '마킹펜이 지난 자리/ 푸른 물결 굽이굽이// 배를 띄우랴'에서 연과 연 사이의 바다를 보라! 게다가 '반 토막만 남겨진 배'는 우리를 금세 이 세상 저편으로 싣고 가지 않는가. 더불어 '굽이굽이' , '進進', '뾰족뾰족' 등등 적절히 배치한 리듬은 시의 맛을 크게 살려준다. 이만한 '언어'와 '사유'라면 당선작으로 충분했다. 최근 회자되는 장광설의 시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상쾌한 작품이다. 앞으로 좋은 시인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마지막까지 논의한 작품은 최인숙씨의 '무지개' 와 허영둘씨의 '고요를 잘 살펴보면' 등이었다. 모두 잘 짜여진 작품들로 읽혔으나 굳이 단점을 들라면 너무 기성품 같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서툴지만 독자의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이 더 새롭고 매력적이라는 점에서 아쉽게 내려놓게 됐다. 이 분들 역시 훗날 좋은 시인으로 만나게 되리라고 믿는다. 단지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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