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심은섭
사진<한땀씩~ 바느질의 여유>님의 카페에서
내비게이션 / 심은섭
흰꼬리사막여우의 눈빛으로 낯선 사막을 횡단하라고 좌회전을 허용하지만, 생의 적정 속도를 위반하면 천둥소리로 감속을 요구했다 나는 이것이 벌목공의 톱날이 탄식의 원을 그리는 소리거나 가뭄의 강바닥을 기어가는 강물의 발정으로 알았다
황색 중앙선을 넘는 순간 카파라치가 나의 전신에 빨간 압류딱지를 붙이면 그는 밤새도록 신열을 냈다 나는 겨울바다가 피죽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귀를 여는 소리거나 들고양이가 허기를 걸어놓은 공터에서 목련이 몸푸는 소리로 생각했다
낮술로 생의 노예가 된 나를 몰래 카메라가 집어삼키려 하자 울음으로 용서를 빌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밤이 불러낸 어둠이 한낮에 졸던 가등을 깨우는 일이거나 붉은 칸나의 입술을 적시는 여우비의 인기척이려니 생각했는데
이런 일들은 악어새가 악어에게 다가가는 안전수칙을 타전하는 소리였다 궁합도 보지 않은 채 동행했다. 하얗게 비어가는 두 무릎, 늪 속 나의 청동시계를 깨우려고 전신이 폐허가 되는 소리였다
시집 : 『K과장이 노량진으로 간 까닭』, 문학의 전당,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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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04년 시 전문지 월간「심상」신인상으로 등단
l `06년 「경인일보」신춘문예 詩부문 당선
l `06년 「5.18 기념재단」<문학상 작품 공모> 詩부문 당선 수상
l `06년 제1회 <정심문학상> 수상
l `08년 「시와세계」후반기 겨울호로 <문학평론> 당선
l `09년 제7회 강원문학 작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