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

목련, 달빛을 봉하다 외 1편 / 문신

자크라캉 2009. 1. 8. 09:32

 

 

사진<염지천 사내>님의 블로그에서

련, 달빛을 봉하다 외 1편 / 문신

 

한지(寒地)에서  삼동을 났다

소식이 여전하므로 마음이 헐거웠다

낡은 신발 한 켤레

축 맞춰 안쪽으로 돌려놓고

마룻장 위 발자국을 지웠다

낯선 방에서 뒤척임이 오래 갔다

새벽녘에 가까운 숲에서

적막을 놓치는 소리가 났다

필경 서툰 짐승이리라

저물녘에는 바람이 골짜기를 건너

북쪽으로 몰려갔다

꼬리털 몇 낱 목련 가지에 걸려 울었다

물끄러미 듣다가 괜히 귓불만 도타워졌다

한밤에 달빛 몇 타래 끊어다가

구구절절하여 한 폭에다 못 쓰고

차곡차곡 결을 따라 접어 두었다

헐거워진 마음이 환해지도록 넣어 두었다

낮과 밤이 고르게 모인다는 춘분날 아침

문 열어보니 뜻하지 않은 소식이 왔다

검은 가지마다 목련

나 말고 누가 밤새 달빛을 접어 봉해 두었을까

차마 펼쳐보지 못할 사연임에 틀림없다

비로소 한 켤레 낡은 신발의 축을

바깥으로 돌려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