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평론]부재하는 몸의 허구

자크라캉 2008. 9. 9. 13:13

 

재하는 몸의 허구

 

이원의 시집"이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읽기

 

화가 파울 클레는 회화가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원의 시집은 누가 읽더라도 명쾌한 회화다. 다만 대상을 놓치는 대신 살아 있는 이미지를 얻어내는 회화 기법의 시집이다. 첫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에서 “육체가 실린 환상은 현실이다”라고 말했다면, 세 번째 시집에서는 신체의 기관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을 반유기체로 바꿔놓는다.

묘사시의 전통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유도한다. 시멘트가 응고되지 않기 위해서는 뒤섞어 주어야 하듯이 그가 만든 이미지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원은 인간이라는 생명체를 크게 ‘몸(살덩이)’와 ‘얼굴’ 두 가지로 재규정한다. 화가 베이컨의 끈적거리고 유동하는 회화처럼 신체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운동하는 이미지인 것이다.

「나이키2」에서 보듯 달려가는 아이의 슬로우 모션을 정지된 화면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듯 표현된 신체는 각 부분마다 하나의 살덩이로 해체되고야 만다. 마찬가지로 「밤의 놀이터」에서도 “모래 속에는 몸통만 남은 말이 다섯 마리 있었다”처럼 기관을 제거한 몸통만 남는다.

이런 살덩이들은 “달려가고”(「나이키1」), “출렁거리며”(「사막에서는 그림자도 장엄하다」), “심장은 아직 붉다 물컹하다”(「퀵서비스맨」), “살이 뭉텅뭉텅 흘러내린다”(「모래의 도시」) 등에서처럼 계속 움직이며 살아 있는 형상으로서의 이미지로써 나타난다. 그래서 역동적이다. 살아 있는 이미지의 형상에서 현재라는 시간은 서로 하나의 짝을 이룬다.

이원의 시집에는 과거의 이미지는 없고 현재의 시간으로 표현된다. 즉 단일한 시간에서 다양한 공간을 표현하거나 다양한 공간에서 단일한 시간을 묘사한다. 이원은 신체를 이성 중심의 영역인 과학의 시각에서처럼 관념적인 신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시에서 움직이는 모든 신체는 늙고 죽고 썩는 것이다.

그러나 사변적 신체는 죽음을 알지 못하기에 썩지 않는다. 사변적인 관념은 죽음을 모르기에 사변화된 육체는 썩지 않지만, 이원의 시는 그것을 부정하는 시이다. “관념을 벗은 몸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에 사람들은 먼저 제 죽음을 만난다”, “사람들의 몸은 죽음이 썩히고 있는 삶이다”(「몸 밖에서 몸 안으로」)에서 보듯이 몸을 대상화하고 저차원적으로 바라보는 근대적 시선과 거리가 먼 것이다.


검은 옷과 검은 헬멧의 퀵서비스맨 오토바이로 차들 사이사이를 비집으며 달린다 등 뒤에서 밀봉된 박스가 덜컹거리고 엉덩이 아래 양쪽에서 주황색 비상등은 쉴 새 없이 동시에 깜빡인다 비상등은 허공의 맥박이다 몸의 주술이다 시간의 다급한 구토다 퀵서비스맨  쉴 새 없이 차선을 바꾼다 납작하고 가파른 사이드 미러에 차들과 허공을 담았다 뱉어버린다 차들의 사이드 미러에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나와버린다


                                     <…중략…>


텅 빈 몸 안에 바람의 근육을 달고 질주하는 퀵서비스맨살을 내어주고 삶의 시간을 얻는 퀵서비스맨 느닷없이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허공이 쭉 찢어진다 짙은 곰팡이 냄새가 난다 브레이크 등에서 흘러내리다 멈춘 퀵서비스맨의 심장이 펄떡거린다 심장은 아직 붉다 물컹하다

― 「퀵서비스맨」 부분


이 시에서 이원은 질주하는 몸(살)으로 인간을 묘사한다. 질주라는 정황은 출렁거리는 이미지이다. “와와와 아이들이 폭우가 쏟아지는 광장으로 뛰쳐나온다”(「나이키―절벽」), “한 아이가 달려간다”(「나이키2」), “한 무리 아이들이자신들의 그림자가 달라붙어 있는 벽을 향해 뛰어간다”,  “아이는 몸이 출렁거린다”(「나이키1」) 등 계속해서 뛰어가고 출렁거리는 역동적 이미지가 반복된다. 또한 “길을 구부렸다 폈다/길을 풀어줬다 끌어당겼다 하기도 해”(「영웅」), “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는 몸에서 쉬지 않고 길을 뽑아낸다”(「한 여자가 간다」)에서처럼 길과 운동은 동시적으로 생성된다.


등에 짐을 지고 한 여자가 언덕을 내려온다 땀이 흥건한 여자의 가죽을 햇빛이 옥수수 껍질처럼 벗긴다 사나워진 햇빛에 찔린 새들은 뜨거운 다리를 떼어내지 못하고 날아간다 상한 냄새가 진동하는 여자는 몸에서 쉬지 않고 길을 뽑아낸다 길은 연탄집게 같은 여자의 맨발이 지나간 곳에서만 생겨난다 살로 만들어진 물컹거리는 길 아래로 지붕들이 모여든다 여자의 몸에서 두 개의 유방이 나란히 허공으로 떠오른다 유방은 하늘 속을 파고 들어간다 떠도는 두 개의 봉분이 된다 허공에서도 지우지 못하는 대지의 시간을 피해 새들이 급강하한다 하늘에는 몸의 길이 끊긴 유방이 떠가고 언덕에는 녹슨 자궁이 덜그럭거리며 떠밀려온다 같은 풍경을 담고 썩지도 못하는 창 근처까지 온 새들은 먼저 날개부터 감춘다

― 「한 여자가 간다」 전문


시간의 흐름과 길과 질주는 같은 개념이다. “생기는 순간마다 제 몸을 삼키는 것이 시간이며”(「나는 부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나는 표지판은 믿지 않아/달리는 속도의 시간은 지금 여기가 전부야”(「영웅」)에서 보듯이 현제의 시간만이 중요하며 과거나 미래의 시간은 부정하고 있다.


한 남자의 두 손이 한 여자의

양쪽 어깨를 잡더니 앞뒤로

마구 흔들었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살 속으로 쑥쑥 빠졌다

여자가 제 몸속에 뒤엉켜 있는

철사를 잡아 빼며 울부짖었다

소리소리 질렀다

여자의 몸에서 마르지 않은

시멘트 냄새가 났다

꽃 피고 새가 울었다

― 「아파트에서1전문


남자와 여자가 싸우고 있는 장면에서 남자의 손이 여자의 어깨를 흔드는 이미지가 출렁거리는 이미지로 변환되며 굳지 않은 시멘트처럼 사물화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여자의 몸에서 철사를 뽑아내며(철근 ․ 콘크리트의 이미지) 문명으로 화석화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이미지를 동반한다. 또한 “몸에서 떨어져본 적이 없는 그림자도 벽을 계속 밀어낸다”(「나이키1」),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비닐봉지가 난다」)처럼 몸(살)에서 파생되어 나온 그림자에 시선이 집중된다.


더럽혀지고 축 늘어진 매트리스는 아직도 몸의 대지였던 때를 간직하고 있다 폐기용 쓰레기통에 늙은 여자처럼 기댄 매트리스는 몸이 닿았던 자리가 군데군데 움푹 들어가 있다 막 벗겨진 짐승의 가죽처럼 헐거워진 허공을 매트리스 밖으로 튀어나온 스프링이 낚아챈다 한 여자가 들고 가던 비닐봉지를 놓친다 젖이 불은 유방 같은 오렌지 하나가 매트리스 앞으로 굴러간다 몸을 놓칠세라 그림자가 앞서간다 몸을 벗어던진 소리들이 층층의 아파트 난간에서 떨어진다 다시 매트리스 안에 갇혀 뒹군다 오렌지를 따라 쪼그리고 앉은 여자의 몸에서 관절이 삭아내린 낙타의 그림자가 빠져나온다 살찐 고양이가 몸 냄새가 나는 그림자를 피해 지나간다 그러나 고양이의 몸이 닿는 곳마다 더 검게 썩어 들어간다 몸 섞는 냄새가 나는 곳이 몸 썩는 냄새가 나는 곳이 고향이다 여자는 헤진 그림자로 온몸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있고 오렌지는 매트리스와 여자 사이에서 멈춰 있다 오렌지 밑이 낙타의 그림자처럼 흥건하게 젖어 있다


* 매트릭스:고어로 자궁이라는 뜻이 있다

― 「매트리스, 매트릭스전문


‘그림자’는 ‘몸’과 같은 주체이며 또한 그림자는 어둠과 짝을 이룬다. 몸보다 그림자가 앞서 달려 나가며 여자의 몸에서 관절이 삭아버린 그림자가 빠져 나오기도 한다. 또한 이원의 시에는 거울의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나를 보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언어)으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이원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본다.

화가들이 거울을 보며 자화상을 그리지만 실존 인물이 아니라 내면에 투시된 왜곡된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다. 즉 거울은 내면을 그려내는 요소이며, 또한 몸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림자도 몸 안에서 밖으로 빠져 나오는 매개체인 것이다. 두 번째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는 ‘창(윈도우)과 벽’의 구조였지만 세 번째 시집은 ‘문과 벽’의 구조로 변용된다. 거울은 문이며 동시에 벽인 것이다.


머리는 덩어리다 덩어리를 뚫고 나온 욕망이 얼굴이다 늘 욕망이 먼저 움직이고 그 욕망을 따라 시간이 움직인다


머리는 막다른 골목이다 얼굴은 막다른 골목의 끝이다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타오르고 있는 자이다 타오르고 있는 자는 흐느끼고 있는 자이다 흐느끼고 있는 자는 더듬거리고 있는 자이다 더듬거리고 있는 자는 제 얼굴을 들여다볼 수 없는 자이다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의 시선은 안으로 향해 있다 제 안의 어둠이 유일한 경전이 되는 세계


제 얼굴을 제 손으로 파헤치는 자는 시간의 화상으로 사는 자이다


어둠은 대지의 것이다 죽은 것들의 시체가 가득 찬 대지에서 씨앗들이 발아한다


얼굴은 제 안의 어둠이 자신을 먹고 있다는 것을 안다 얼굴은 어둠을 안으로 몰고 올라와 스스로 폭풍이 된다 폭풍은 밖으로 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분다 내부는 폭풍으로 타오른다


천천히 어둠에 잠기고 있는 얼굴은 차분하고 고요하다 얼굴은 자신이 맨 처음 태어난 곳이 어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얼굴: 반야심경 261자를 새겨넣은 시간

(쌀) 한 톨 머리: 시간(쌀) 한 톨을 차마 삼키지 못하는 어둠

― 「얼굴 속으로전문


얼굴과 거울은 하나가 될 수 없는 관계이다. 살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 얼굴이다.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의 시선은 안으로 향해 있다 “제 안의 어둠이 유일한 경전이 되는 세계”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없는 자는 눈먼 자이며 자신을 부재하는 자이다. 그래서 “나는 부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거울: 내가 들여다보면 내가 사라져버 리는 벽 또는 언어”, “거울: 내가 밖으로 나와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 내가 갇혀서 끓고 있는 진창”(「거울을 위하여」)에서처럼 얼굴은 구멍을 가진 표현 기계이다.

‘얼굴과 구멍’이 주체와 객체의 관계이듯 ‘얼굴과 거울’의 관계도 주체와 객체의 관계인 것이다. 첫 시집에 실린 「밥솥과 조직」의 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김이 올라오고 있는 그 구멍이 안과 밖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다. 즉 외부에서 내부로의 이동은 구멍을 통해서 소통한다. 두 번째 시집에서는 몸속에 웹브라우저를 내장하고 모니터가 내 눈을 대신하여 전자사막을 떠다닌다. 무수히 많은 타자인 나와의 소통을 위해 유목민이 된다. 나는 단지 클릭을 통해 세계를 경험 할 뿐이다.

이와 같이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에서 자신이 마주하는 주체의 성격은 사이버 내의 존재로서 끊임없이 유목하는 존재이며 이때의 존재감이란 클릭을 통해서만 경험될 수 있는 것이다. 말미의 해설처럼 전자사막의 유목주의와 창(window)을 통한 접속의 문제로 변형되어 타자와의 소통 문제를 거론한다. 세 번째 시집에서는 거울을 통하여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 즉 자신과의 소통 문제를 다루는 것이 다른 점이다.


거울: 내가 들여다보면 내가 사라져버리는 벽 또는 언어


살그머니 들어갈 것 두리번거리지 말 것 의심하지 말 것 거울 속으로 손을 뻗지 말 것 뒤돌아보지 말 것


어제의 시간과 내일의 시간이 거울로 걸어 들어와 조우한다 복받쳐올라 서로 아무 말 못한다 쓰다듬지도 못한다 한없이 쳐다보고만 있다 거울을 보면 입을 다물게 되는 이유다


거울을 들여다본다 시간이 움찔한다 한두 번 그러는 것도 아닌데 매번 그런다


거울 속에서 내 얼굴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나는 꽃도 아닌데 더욱 나는 불빛도 아닌데


흐르는 것들은 제 안에 골짜기를 감추고 있어 어둠 속에서 어둠이 구름 속에서 구름이 모래 속에는 모래가 씨앗 속에는 씨앗이 허공 속에는 허공이 거울 속에는 거울이 얼굴 속에는 얼굴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종종 타인의 얼굴에 시선을 자석처럼 붙이고 따라가며 구경한다 시간의 창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볼 때는 멈칫한다 시간의 벽이기 때문이다


질주하는 몸은 공포로 가득 찬 몸이다 거울 속으로 달려가면 거울 끝에 벽이 있다 질주하던 몸은 날계란처럼 터진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벽 때문에 바로 뒤의 벽을 떠올리지 못한다 진짜 벽을 감추기 위한 거울의 위장술이다 거울은 진화한다


거울을 스칠 때마다 얼굴을 베인다 거울에 베인 내 얼굴에는 시간이 핏물처럼 스민다


거울의 꿈은 제 내부를 온전하게 텅 비우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때까지만 꿈인 것이어서 거울은 계속 실존한다


벽 속에서 거울이 투명하게 썩어간다 거울 속의 나도 투명하게 썩어간다


거울: 내가 밖으로 나와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 내가 갇혀서 끓고 있는 진창

                                                                ― 거울을 위하여전문


‘주관적인 내면을 가진 나’와 나를 응시하는 ‘객관적 세상사람으로서의 나’는 거울이 닫힌 벽이기 때문에 그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나는 여전히 수도꼭지를 붙잡고 머리를 세면대 속으로 쑤셔 넣는다 거울에 몸이 들어가지는 않고/내 살 밖으로 등뼈가 튕겨져 나온다”(「닫힌 것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벽 때문에 바로/뒤의 벽을 떠올리지 못한다 진짜 벽을/감추기 위한 거울의 위장술이다 거울은/진화한다”(「거울을 위하여」)처럼 이원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끊임없이 내면을 향해 다가가지만, 번번이 거울의 벽에 부딪쳐서는 튕겨나고야 만다.


얼굴이 거울을 열고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려고 하니 얼굴은 어느새 거울을 잠가버린다 거울로 들어가는 문을 찾는다 거울은 미끄럽고 태연하다 구름무늬가 양각된 타일이 얼굴의 사방에 붙는다 얼굴은 벽의 시간이 된다 나는 이제 막 내 등까지 도착한 오늘의 밤에 기댄다 밤은 나를 뒤적이지 않는다 내가 밤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내가 공포이기 때문이다 공포는 사랑이며 공포는 껴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지 거울 속의 얼굴이 나 대신 입을 벌린다 그곳의 밤이 얼굴을 한 줄 한 줄 벗겨낸다 맨살이 새잎 나고 꽃 필 것처럼 깜깜하다 거울로 들어가는 문을 찾지 못해 내게는 오늘의 밤이 계속된다 얼굴이 낯설어진다 내가 거울 밖으로 고개를 다 돌리기도 전에 거울 속의 얼굴이 뒤통수를 보인다 사랑은 공포여서 나는 거울 밖으로 걸어나온다 몇 걸음도 걷지 못하고 나를 두고 거울의 밤 속으로 사라진 얼굴이 벌써 그립다

                                                                ― 얼굴이 그립다전문


허공의 몸이자 거울의 몸인 “내”가 나의 내부로 들어간 “나”라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가 이번 시집의 결론이다. 두 번째 시집은 시인의 말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처럼 전자사막을 통하여 타인과의 소통을 이야기 한다면, 세 번째 시집은 격렬한 내부를 가진 언어를 만든다. 나는 “부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즉 ‘세상 사람의 나’와 ‘주관적인 내면을 가진 나’, 그리고 ‘나의 내면으로 들어간 나’, 이 세 명의 내가 현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기표와 관념을 넘어서서 언어의 관계에 깊이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첫 시집의 「아이라는 기표를 위한 상상」에서는 “아이라는 기표를 불렀더니 아이가 그림자 까지 붙이고 나타났다”와 두 번째 시집의 「허공에 떠 있는 것」에서는 “단단한 사과 하나가 새벽의 공기 위에 떠 있다 이 사과는 관념에 물든 사과다”라 했다면, 이번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는 시적 언어를 발견하기 위한 시이다. 내면으로서의 언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거울을 통해서 또다른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네 번째 출간될 시집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