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

처용삼장(處容三章) / 김춘수

자크라캉 2008. 8. 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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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재경 율어 향우회>님의 카페에서

 

용삼장(處容三章) / 김춘수 

   1

그대는 발을 좀 삐었지만
하이힐의 뒷굽이 비칠하는 순간
그대 순결(純潔)은
형(型)이 좀 틀어지긴 하였지만
그러나 그래도
그대는 나의 노래 나의 춤이다.


   2

유월(六月)에 실종한 그대
칠월(七月)에 산다화(山茶花)가 피고 눈이 내리고,
난로(煖爐) 위에서
주전자(酒煎子)의 물이 끓고 있다.
서촌(西村) 마을의 바람받이 서북(西北)쪽 늙은 홰나무,
맨발로 달려간 그날로부터 그대는
내 발가락의 티눈이다.


   3

바람이 인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바람은 바다에서 온다.
생선 가게의 납새미 도다리도
시원한 눈을 뜬다.
그대는 나의 지느러미 나의 바다다.
바다에 물구나무 선 아침하늘,
아직은 나의 순결(純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