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당선작

[2007 <시인세계> 신인상 당선작]

자크라캉 2008. 2. 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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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쥴리아carry24568>님의 블로그에서

 

[2007 <시인세계> 신인상 당선작]

 

녀의 재봉틀 외 2편 / 이애경

 

두두두, 밤늦도록 말을 타고 달려요 안장 위의 그녀, 휘날리는 말갈기를 보드랍게 쓰다듬죠 네 평짜리 마구간엔 모래 같은 보푸라기 날리구요 붉디붉은 그녀의 눈 말발굽소릴 따라다녀요 얼마나 달렸을까요 잠시 고삐를 늦추어요 지친 말이 털썩, 모래바람 위로 주저앉아요 가쁜 숨 내려놓고 괜찮다, 괜찮다고 서로를 위로해요 숨을 고른 말이 먼저 히힝, 무릎 일으켜요 달리는 말발굽 아래 꽃송이 피어나고 초록 이파리를 심는 그녀, 부지런히 고삐를 당겨요 힘껏 페달을 밟아요 하나의 꽃밭이 완성될 때마다 어둠이 부풀고 허기가 부풀어요 꽃을 피우는 푹신한 이불 한 채, 이쯤에서 잠시 꿈길을 걸었나? 고삐 놓친 손끝에서 꽃비린내 번지고 말 한 마리 쏜살같이 달아나요 헛디딘 말발굽 아래 피다 만 꽃 한 송이 누워있어요 충혈 된 전등, 졸음 가득 된 눈이 뚝뚝, 빛을 흘려요

 

 

 

/ 이애경

 

붉은 햇빛이 피는 봄날, 가시밭길에 쓰러져있는 엄말 끌어당겨요 축 늘어져 딸려오는 엄마, 꽃 지듯 몸이 지고 있어요 몸 군데군데 코가 빠지고 실밥이 너덜거려요 작은 바람에도 팔랑, 뒤집히는 엄마를 고르게 펴요 뜨개질도 재봉질도 할 줄 모르는 나는

 

하는 수 없어요 늘 하던 대로 수선 집에 맡겨야죠 어떡하나요, 구멍 난 몸에 덧댈 조각이 없어요 내가 가진 건 성긴 슬픔이거나 젖은 마음뿐,

 

하는 수 없어요 젖은 마음이나마 오려 구멍 난 엄말 메워야겠어요 물빛 엄마를 물들여야겠어요.

어떠세요 엄마, 제 마음 잘 스며드나요?

 

 

 /  이애경

 

환한 알몸,

양파에게도 부끄럼이 있다는 것 나 껍질을 벗기다 알았네

한 겹 옷을 벗기자 놀란 양파 살갗을 움츠리네

저 자연스런 본능은 가장 깊은 곳에 여성의 생식기를 숨겨둔 때문이라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맥박소리

쿵쿵 심장 뛰는, 씨눈이 길 여는 소리

환청, 그래 환청이라 생각했는데

 

세상에나, 잘라버린 뿌리 설마 그것이 파란 씨눈의 젖줄이었을 줄 나 까맣게 몰랐네

 

알몸 드러난 순간

맵게 노려보는 눈빛, 독기를 품었나?

그래, 미안하다 미안하다 다독이는데

아 글쎄,

꽃처럼 활짝 제 몸을 열어주는 게 아닌가

저를, 중심을 다 내어 보이는 게 아닌가

 

그만 아찔, 두 눈에 핏발이 서는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