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시와세계> 겨울호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최혜리
사진<미디어다음뉴스>에서
2007년 <시와세계> 겨울호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 최혜리
<25시 외 4편 / 최혜리>
세상은 낯설게 두리번거려 나는
처음 담배 피우던 때를 기억하지
수염은 빠르게 자랐어
늦도록 자판을 두드려
워커홀릭 틈에 끼어 두려울 뿐이야
그림자를 따라오는 그림자 그를
이길 수 없어 카멜레온이 되기도 해
오늘도 야근, 그래도
결혼은 어머니를 감동 시켰지
가로수가 꾸물대는 오늘
눈이 올것 같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묻지마
랩가수가 진도 아리랑을 불러
그런날은 뽀삐가 꼬리를 흔들지
자정을 넘긴 시계가 허우적거려
그래도 나는 25시
그것은 열정적으로 살아 있다는 뜻이야
<아마씨>
숲
속에
심을 거야
아마씨를 어린
나무들 다리 사이로
햇빛을 메모하지 아직
차가운 이빨은 바람 속에
보여 온 종일 택배를 기다려
오메가3만 오면 돼 더 이상한 날
아가는 추억같은 거 기다리지 않아
불뇌사리탑에 108배를 해야지 택배를
기다리고 있어 사라지고 있을 거야
아마씨가 햇살 속에서 싹이 틀
거야 유통기한만 지키면 돼
아마 오늘쯤 도착하겠지
너무 먼 곳에
가지 않아
아마씨를
키우면서
무럭무럭
늙어갈거야
<일요일은 뻥>
뻥을 치고 있었어요
잠수교 둔치에서
일요일 이었어요
알곡들이 눈알이 번득거리는
뻥이요 뻥
멱살 잡은 쇳덩이는
꽁무니를 따고 있었어요
달구어진 오른팔이 돌고
움켜진 잠자리가 돌고
뻥을
치고 있었어요
부글거리며 끓고 있었어요
어묵장사 아낙 전대는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어요
뻥
바람이 빈둥거리고
꽁빠지게 달아나고 있었어요
할머니, 둥근 의자에 앉아
오후의 햇살을 다듬고 있었어요
뻥 튀기고 있었어요
<꽃눈을 깨우는 봄이다>
서명을 했다
스트래처카에 실려간 그를,
사라진 목소리를
불러 세운다 대기실 창살에는
진물나던 시간들이 풀리고
있었다 이월 지나 삼월을
펌프질 하던 그는
동강 할미꽃처럼 모로 눕는다
잘려진 무게만큼
뉴란타 투*를 입에 물고
청진기 사이로 긴 숨을 몰아쉰다
초록을 뿌려주는 산세베리아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
봄나물로 병실 가득
파닥인다 그의
머리카락이 초록이 되기를
잠자는 꽃눈을
깨우는 봄이다
*위장약
<장 롱 면 허>
재래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흥정해
떨이 매장에서 싱싱한 물미역을 찾아
창고 정리에서 외투를 사 그 . 래 . 도 .
랩이 북적이는 대학가를
힙합바지 입고 걸 . 어 . 가 .
장롱면허지만 지구를 운전해
광 마우스로 구글에 가지
제주도 성문화 박물관을
보았어 도깨비도로도
은하수 같이 따라왔지 쉿!
클 . 릭 . 중 .
모두 다 비켜 눈물을 감춰
앞길을 밝혀 자신을 지켜*
그가 수제비 먹겠다고?
칼국수를 해 유튜브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야
차업가들은 거부가 됐어
"미디어 거인"
어제 밤 위성에서 본 지구는
황 . 홀 . 했 . 어.! 연말정산
영수증 챙기지 못 했어 그러니까
꿈꾸는 난 벼락부자 취미 아니야
흰 머리카락 뽑다 가끔
풋 사과 같은 시도 쓰면서
세상이 널 버려 널 자꾸 속여도
천! 하! 무! 적
*엠씨몽의 <천하무적> 랩가사
<당선소감>
태풍이 불어오고 있었다. 오늘은 쉬 거라 하시는 어머님, 그 말씀을 뒤로 한 채 산에 올
랐다.
생나무 가지가 허옇게 부러지던 날, 법당 문이 닫힐 때까지 절을 했다 숲이 심장처럼
펄떡거렸다. 눈은 퉁퉁 부었다. 그렇게 10년 흘렀다 그러던 어느날 의사는 내게
임신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시가 내게 그렇게 더디게 왔다
나를 찾아온 연들과 손을 꼭 잡고 날실과 씨실을 엮는다
행과 행 사이로
두시와 두시 사이를 오가며
시계가 째깍 거린다.
그들과 춤을 춘다. 새벽을 바라본다.
나의 밤은 그렇게 사라진다.
두시 앞에 쪼그리고 연이 앉아있다.
고맙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 드립니다.
늘 새로움을 일깨워 주시는 선생님, 그리고 관동대학교 현대시작반 식구들
이 겨울 시원한 물냉면을 같이 먹고 싶습니다.
곁에서 응원해준 아들과 투병 중인 남편의 빠른 회복을 빌며
맛있는 시를 짓겠습니다.
<최해리>
주소 : 강원도 강릉시 노암동 395-4 한라아파트 201-208
연락처 : 010-3075-6234
e메일 : chlqhrsu123@hanmail.net
<심사평>
언어의 이방 현실의 이방
<시와세계> 신인상 당선작으로 이희원의 '부드러운 블랙' 외 4편과 최해리의 '25시' 외 4편을 뽑는다. 전자가 보여주는 것은 언어유희이고 후자가 보여주는 것은 욕망의 문제다. 시의 경우 언희의 유희는 단순한 언어의 유희가 아니라 언어의 모순과 한계를 자각하고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적 모험과 통한다. 언어는 교통의 수단이지만 사실 한번도 교통에 성공한 적이 없고 그것은 언어를 구성하는 기표와 기의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희원이 보여주는 기표의 놀이는 기의, 의미, 개념에 대한 불신과 회의이다.
예컨데 '부드러운 블랙'에서 스타벅스는 별이 떨어지고 멋진 놈들이 주둥이를 대는 이미지로 분할되고, 부드러운 블랙(흑인 여성의 살결?)은 부드러운 블랙홀이 된다. 말하자면은 여성은 블랙홀이다. 검은 구멍은 우주의 구멍이고 이 구멍이 구원의 구멍이다. 왜냐하면 암흑의 구멍은 시간도 공간도 빛도 모두 흡수하기 때문이다. 한편 스타벅스는 밥 말리의 노래를 낳고 이런 연상은 한이 없다. 요컨대 이희원의 시에선 언어가 의미로 고착되는 게 아니라 언어가 계속 다른 언어를 부르고 이런 놀이, 언어의 이방에 은폐된 것은 욕망이다.
최혜리는 언어의 이방이 아니라 현실의 이방을 노래한다. 25시는 현실을 지배하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밖의 시간이고 현실의 이방이고 고통의 시간이다. 0시가 시계 시간의 종합이라면 25시는 그런 시간을 모르고 현실을 모른다. 그러므로 이런 시간 속에서 그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욕망)에 대해 침묵한다. 욕망은 현실이 낳고 25시는 욕망의 죽음,침묵,얼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25시로서의 자신을 열정적인 삶으로 정의 한다. 그러므로 25시는 고통이 정열이 되고 암흑이 진리가 되는 시간이다. 두 분 모두 정진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ㅣ 이승훈(시인 . 한 양 대 교수)
송준영(시인 . 시와세계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