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觀照와 洞祭의 文學 / 李 昌 培
21. 觀照와 洞祭의 文學 / 李 昌 培
흔히 수필을 물 흐르듯이 생각나는 대로 쓴다고 하지만, 그것을 책 놓은 작품에서 오는 인상이지, 아무 생각이나 그대로 형식도 없이 써 놓으면 작품이 되느냐 하면 그렇게 되길 않는다, 수필도 하나의 통일성 있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 전개되는 과정 혹은 틀을 형식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까 소설이나 시와 마찬가지로 소제와 주제가 어떤 형식 속에 담겨져야 한다는 말이다.
수필의 경우 소제는 작가의 머리 속에서 생각한 주로 과념적인 것 일수도 있고 사물에 대한 관찰과 의견일 수도 있고 직접 경험한 생활 체험일수도 있다. 사실상 소재는 어떤 것이든지 상관없고 그것이 재료가 되어 작품이 되는 것이니까 작품의 성과는 소재로써 결정 되는 것은 아니다.
주제는 작품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하여 무슨 말을 하고자 한 것인가, 즉 작가의 의도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작품의 정신이 되는 주제가 보편성 있고 심원할 때에 작품의 가치는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가 아무리 심원할 뜻을 작품에 담고자 한들 그 뜻은 소재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현되는 것이 아니니까 소제의 선정과, 선정된 소제를 골라서 그것을 우수한 수법으로 다루어 놓아야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작품은 주제가 따로 있고 형식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육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유가적 기능을 갖는다.
작품을 쓸 때 먼저 주제가 생각나서 그 주제를 살리기 위하여 소재를 구하는 수도 있고 먼저 소재가 있어서 그 소재를 관찰하고 숙고한 결과 어떤 의미를 발견하는 수도 있지만, 주제는 소재가 없이는 생각나지 않고 반면 소재에 주재가 담겨지지 않으면 그것은 한낱 텅빈 현실 내지는 혼돈에 불과하다.
이런 일반론은 소설의 경우와 크게 차이가 없지만, 수필은 그 소재가 소설처럼 허구적 성격이 없고 주로 작가의 생활처럼 흑을 자기고백적인 것이 특징이다. 물론 사람이나 객관현실에 대한 관찰 소감, 의견 같은 것을 말할 수는 있지만, 역시 위대한 수필작품은 뭉태뉴의<隨想錄>,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집)과 같이 자기 고백적인 내용이 담겨진 작품들이다.
그래서 수필은 원숙한 인생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이 원숙하여 인생을 멀리서 관조하고 거기에서 지혜를 터득할 나이가 되에서 쓴 글일수록 보편성이 있고 의미가 깊다. 그리고 자기의 생활을 거리낌 없이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인생이 관대해지고 자기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고서는 기대 할 수 없다.
수필을 쓰고자 하는 분은 늘 교향을 넓혀야 하고 사물에 대한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돌 하나 구르는 것,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그대로 보지 말고. 거기애서 어떤 의미를 찾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런 습관은 그대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교양과 체험이 느는 것과 비례해서 길러질 뿐이다.
그와 동시에 글의 표현을 닦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 좋은 소재라 해도 표현력이 부족하면 좋은 작품이 되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생각을 전개할 것인가, 무슨 얘기는 넣고 무슨 얘기는 빼버릴 것인가, -이런 계획성 있는 문장의 구성력이 있어야 하고, 독자에게 자기의 생각을 설득 시킬만한 문장력이 길러져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글은 습관이라고 생각하고서 항시 글을 쓰는 습관을 체득하는 것이 좋고, 한편 남이 쓸 좋은 글을 읽어서 그것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습관을 붙여야 한다.
그리고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얻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발표는 남에게 비판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자기 글에 대한 자신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얻을 때까지 조건을 쌓아야하고, 자신을 얻은 다음엔 자신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겸손한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아무생각이나 잔소리를 늘어 놓으면 수필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예술품으로써의 수필을 써보고자 하는 안목 높은 야심이 앞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