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52. 조지훈, `승무`
승무(僧舞)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도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사(紗) : 발이 얇고 성글게 짠 비단의 한 가지. 나빌레라 : 나비로구나.
외씨보선 : 외씨처럼 갸름하고 코가 예쁜 버선. 삼경(三更) :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감상
이시에는 4음보의 율격이 드러나 있고 '승무' 라는 소재를 채용하여 전통성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감추고' 를 '감추오고'로, '모으고' 를 ' 모두오고'로 표현하여(시적 허용) 어감과 운율을 살리고 있다. 수미상관의 구조를 취하고 있어 시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1연부터 3연까지는 화자가 관찰하고 있는 사람이 승무를 추기 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고 특히 3연에서는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라는 역설적 표현을 사용했다. 7연은 이 시의 주제를 담고 있는 연이며 승무를 추고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해준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라는 대목에서 '복꽃 고운 뺨' 이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때 승무를 추고 있는 사람은 여승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두 방울' 은 '눈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라고 한 부분에서는 앞에서의 '눈물'이 번뇌를 의미하고 있으며 그 번뇌가 '별빛'으로 승화되었다는 것을 알 수있다. 결국 이 시는 한 여승이 승무를 춤으로써 자신의 세속적 번뇌를 종교적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있는 것이다. 여승이 '세속적 번뇌의 종교적 승화'를 이루는 데에 '승무'가 매개체가 되고 있다.
이 시는 감상하기가 꽤 까다로운 시였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예스러운 어휘가 사용되기도 하였고, '세속적 번뇌의 종교적 승화' 라는 주제는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역시 문학 작품을 잘 감상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학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좋은가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것들을 직접 경험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폭넓은 독서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는 것이 좋을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