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시

무등 / 서정주

자크라캉 2007. 6. 18. 13:11

 

 

 

 

 

 

 

 

 

 

 

 

 

 

 

 

 

 

 

 

 

 

 

 

 

 

 

 

 

                                사진<칼라>님의 블로그에서

 

/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

 

청산이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농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