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

가난뱅이의 눈 / 보들레르

자크라캉 2007. 5. 9. 20:03

 

 

사진<덕성미녀 전도단>님의 카페에서

 

 

 

 

난뱅이의 눈 / 보들레르

 

 


아! 당신은 어째서 내가 오늘 당신을 미워하는지 알고자 한다. 그 까닭을 당신이 이해하기란 아마 내가 그것을 당신에게 설명해 주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란 사람은, 내가 아는 한, 투시력 없는 여성의 제일 좋을 예이니까.
우리는 함께 기나긴 하루를 보냈지만, 그것도 나에겐 짧은 것 같았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생각이 서로 일치하고 우리 두 사람의 넋이 차후로는 오직 하나일 뿐이기를 단단히 기대하였던 것이다. ㅡ 누구나 꿈꾸면서도 아무도 실현하지 못한 걸 보면, 이것도 결국은 부질없는 꿈이었던가 보다.
그 날 저녁, 당신은 좀 피로하여, 새 가로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새 다방 앞에 앉고 싶어하였다. 다방은 아직도 온통 석고 가루가 흩어져 있었지만, 미완성인 대로 이미 그 호화로움을 자랑스럽게 과시하고 있었다. 다방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스등도 개시의 온 정열을 발휘하여 힘껏 사방을 비추고 있었다, 눈부신 새하얀 벽을, 번득거리는 거울의 면을, 쇠시리와 박공의 금박(金箔)을, 끈으로 개를 끌고 가는 볼이 오동통한 사동(侍童)을, 주먹 위에 앉혀 놓은 매를 웃으며 웃으며 바라보는 귀부인을, 머리 위에 과실이며 파이며 사냥해 온 짐승을 얹고 있는 님프와 여신들을, 과즙이 들어 있는 조그만 항아리며 염색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는 두 빛깔의 오벨리스크를 내밀고 있는 에베며 가니메드를. 모든 역사와 모든 신화가 여기서는 입맛을 돋구기 위해 이용돼 있었다.
우리들의 바로 앞 보도 위에, 착해 보이는 한 사나이가 서 있었다. 나이는 마흔쯤 되어 보이고, 피로한 얼굴에는 희끗희끗한 수염이 나 있었는데, 한 손으로는 어린 사내아이를 붙잡고 있고, 또 한쪽 팔에는 걷기에는 너무나도 약한 어린애를 안고 있었다. 그는 유모 구실을 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저녁 바람을 씌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이들 세 사람은 비상하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그 여섯 개의 눈은, 연령에 따라 서로 미묘한 차이는 있었지만, 다 같이 감탄한 듯이 새 다방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우냐! 얼마나 아름다우냐! 빈민계의 돈을 모조리 갖다 저 벽에다 쳐넣은 것 같구나.] ㅡ 소년의 눈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얼마나 아름다우냐! 그렇지만 이 집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못 들어간다.] 제일 어린 아이의 눈으로 말하자면, 너무나도 매혹되어서, 어리둥절한 지극한 기쁨 밖에는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요(歌謠) 작가들은 즐거움은 사람의 넋을 착하게 하고 마음을 부드럽게 해 준다고 노래한다. 그 날 저녁, 나에 관한 한, 그 노래는 옳았다. 나는 그들의 눈에 감동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갈증을 풀기에는 너무나도 커 보이는 우리들의 컵과 물그릇을 좀 부끄럽게 여겼다. 나는 내 눈길을 당신 쪽으로 돌려, 내 사랑하는 임이여, 당신 눈 속에서 내 생각을 읽어보려 하였다. 당신 눈 속에,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야릇하게 부드러운 당신 눈 속에, [변덕]이 깃들고 [달님]이 영감(靈感)을 불어 넣는 당신의 푸른 눈 속에 나는 잠겨 있었다. 그러자 당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눈을 휘둥그레 가지고, 난 정말 못참겠어요! 다방 주인에게 말해서 저리 가도록 할 수 없을까요?]
이렇게도 서로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요, 사랑하는 천사여, 그리고 생각이란 이렇게도 서로 통하지 않는 것이요, 서로 사랑하는 사람끼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