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작시

두부 / 심은섭 , 2007년<시인정신> 겨울호

자크라캉 2007. 4. 15. 18:16

 

 

                              사진<음식동의 보감>님의 블로그에서

 

 

/ 심은섭

 

 

모서리마다 귀를 세워 혀의 비위를 맞추려는 콩들

철모를 쓰고 도는 맷돌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허리 굽혀 무참히 순교한다

악 다물고 격자무늬 보자기를 스스로 통과하며 흘린

뼈의 눈물

비지라는 살점도 버렸다

무쇠가마솥에서 열병을 앓고 난 흰 살결은

혀의 미각을 섬기는 노예가 되지만 때로는

생의 비린내를 횡격막橫隔膜에 가두려고

무릎관절에 바늘을 세우고 우는 날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혀 끝에 맛의 누각을 지어주고

동전 몇 잎 받는 목수의 족속이라고 말하지만

혀의 의관으로 살던 그는 가끔

행주치마 한 번 벗어보지 못하고

아궁이에 불만 지피다 치매 걸린 늙은 앵두나무의

독백을 생각한다

뜨거움과 무게에 짓눌려보지 못한 생의 무덤 속에는

보름 달이 뜨지 않는다는 그 말을...

전신의 뼈를 버려야 완제품이 된다는 것을 안다

나무틀에 앉았다

육중한 맷돌이 짓누른 자리에 칼끝이 또

살 한 점 떼어낸 뒤

하얀 육면체 제복을 입을 수 있었다

 

 

2007년<시인정신>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