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손택수 ▲일러스트 잠산 [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31
[애송시 100편 - 제 69편] 농무 / 신경림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 69편] 농무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31
[애송시 100편 - 제 68편]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 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28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일러스트 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 황인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28
[애송시 100편 - 제 66편] 의자 / 이정록 [애송시 100편 - 제 66편]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28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생명의 서(書) / 유치환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생명의 서(書) /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25
[애송시 100편 - 제 64편]섬진강1 / 김용택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 64편] 섬진강1 /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25
[애송시 100편 - 제 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 63편] 그리스도 폴의 강(江) 1 / 구상 아침 강에 안개가 자욱 끼어 있다. 피안(彼岸)을 저어 가듯 태백(太白)의 허공속을 나룻배가 간다. 기슭, 백양목(白楊木) 가지에 까치가 한 마리 요란을 떨며 날은다. 물밑의 모래가 여인네의 속살처럼 맑아 온다. 잔 고기떼들이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25
[애송시 100편 - 제 62편] 눈물 / 김현승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 62편]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生命)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들이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하신 ..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21
[애송시 100편 - 제 61편] 노동의 새벽 / 박노해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 61편]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아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 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2008.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