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100년-애송시100편 152

[애송시 100편 - 제 92편]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 92편] 참깨를 털면서 /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

[애송시 100편 - 제 91편]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 일러스트 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 91편] 거짓말을 타전하다 / 안현미 여상을 졸업하고 더듬이가 긴 곤충들과 아현동 산동네에서 살았다 고아는 아니었지만 고아 같았다 사무원으로 산다는 건 한 달치의 방과 한 달치의 쌀이었다 그렇게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 살았다 꽃다운 청춘을 팔면서도 슬프..

[애송시 100편 - 제 90편]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 일러스트 잠산 [애송시 100편 - 제 90편] 추일서정(秋日抒情)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 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차가 ..

[애송시 100편 - 제 87편] 껍데기는 가라 / 신 동 엽

▲ 일러스트 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 87편] 껍데기는 가라 / 신 동 엽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

[애송시 100편 - 제 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 일러스트=잠산 [애송시 100편 - 제 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

[애송시 100편 - 제 83편]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 일러스트=권신아 [애송시 100편 - 제 83편] 솟구쳐 오르기 2 / 김승희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