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 김명리 사진<상아>님의 블로그에서 빈집 / 김명리 어스름 녘이면 한담이라도 나누는지 늙은네 서넛 거기 웅크리고들 앉았다 두런거리며 담배들을 맛있게 돌려 태우는 모습을 본 듯도 하였다 한결같이 물빛만 오롯이 짙은 낡은 입성들을 하고 있었는데 물방울이 뼈에 맺혔다 하느니 솔찮게 풀어졌다 하느.. 문예지발표작 2006.06.21
창세기, 아홉째 날 / 박강우<시향 2006년 여름호> 사진<수경>님의 플래닛에서 창세기, 아홉째 날 / 박강우 거울이 손을 잡아당긴다 팔이 길어진다 거울 안으로 들어간 팔은 거울 안쪽의 견고한 벽에 박힌다 벽에 박혀 있는 팔을 붙잡고 계단이 거울 의 천정으로 오른다 계단에 매달려 있는 사과가 떨어진다 햇살을 받으면 팔은 번식을 시작하여 견.. 문예지발표작 2006.06.21
프렐류드 / 김언희 사진<오또기>님의 블로그에서 프렐류드 / 김언희 변기 속에서 사마귀를 보기 시작하면, 그 사마귀와 허물없는 사이가 되기 시작하면, 벌건 대낮에 내 집 개가 나를 보고 길길이 짓기 시작하면,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 문을 열 때 마다 문 밖에 서 있기 시작하면, 징글징글한 前妻처럼 우연히 마주치.. 문예지발표작 2006.06.21
백색 비가역 반은 / 장석원 사진<네이버 이미지>검색에서 백색 비가역 반응 / 장석원 세븐일레븐 점원은 리모컨을 집어든다 바코드 단말기를 들고 고개를 까닥인다 물위에 연기가 흐르고 도박장은 불타고 여자 경찰이 바지를 걷어 올리자 점원은 아이스바를 먹는다 세븐일레븐 헤븐 드리븐 아이 워너 뉴 드럭 세븐일레븐 헤.. 문예지발표작 2006.06.15
풀 숲 우주 / 박형준 출처카페 : 계간 정인문학 풀숲 우주 / 박형준 새벽 풀숲에 거미가 이슬 다리를 놓았다 간밤 풀숲에 훅 끼친 숨결 남아 있었나 이슬 속 싹 틔운 행성 반짝이는 몽유(夢遊)에서 돌아온다 이윽고 거미는 꽁무니에서 실을 풀어 바람에 실려 날아간다 아릿한 통증으로 짜여지는 미명(未明) 얼어붙어 선명해.. 문예지발표작 2006.06.03
태초의 어둠 / 이승하 출처카페 : 계간 정인문학 태초의 어둠 / 이승하 태초에는 모든 것이 어둠이었으리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우리는 모두 어둠으로부터 왔기에 잠을 잘 때는 눈감는 게지 신이여 임종 이후에 내가 있게 될 세계가 어둠인지 밝음인지 가르쳐주소서 나 탄생 이전의 세계가 어둠이었는지 밝음이었는.. 문예지발표작 2006.06.03
땡감 / 이운학 출처카페 : 계간 정인문학 땡감/이윤학 담을 넘어온 감나무 가지에 땡감 하나가 달려 있었다 창문을 열 때마다 마주친 땡감 하나 감나무에 열린 무수한 땡감을 잊었다 계간 정인문학』2006년 창간호 중에서 ☆ 프로필 시인 이윤학 1965년 충남 홍성에서 출생하여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1990.. 문예지발표작 2006.06.03
비밀의 정원 / 곽은영<다층>2006년 봄호 사진<박현정님의플래닛>에서 비밀의 정원 / 곽은영 토란은 넓은 잎을 펄럭이며 서쪽으로 장갑을 던지고 붉은 구 름이 미궁의 하늘 입구를 가리운다. 전령처럼 새 날아와 발치에 앉는다. 여자는 정원 한 켠에서 길고 긴 뜨개바늘을 움직인다 바구니 안에는 녹슨 가위 여자는 바늘코를 이어 자신의 .. 문예지발표작 2006.05.23
겨울날의 파시즘 / 이민호<다층>2006년 봄호 사진<렌즈보는세상>님의플래닛에서 겨울날의 파시즘 / 이민호 해안가 서성이다 갯벌에 발목 잡힌 수천 수만 새들에게 곱은 끝마디 저 멀리 가리키며 손문자를 날린다 일제히 날아 오르라 날개짓에 밀려 바다는 저 만치 물러서고 한 번쯤은 이 무거운 지상도 가벼움에 휘청이며 주저 앉으리 봄이 .. 문예지발표작 2006.05.22
버드나무의 비밀 / 양해기<다층>2006년 봄호 사진<천둥>님의 플래닛에서 버드나무의 비밀 / 양해기 가느다란 발목 끝으로 나무는 무성한 잎을 물어와 그늘을 만 들고 있다 매미들도 울음 그친 고요한 나무의 품 안, 여름의 미세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뿌리가 뽀족한 이파리들 일제히 내 눈치를 살핀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행동을 멈춘다 오히.. 문예지발표작 2006.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