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짝 / 김혜수 활짝 / 김혜수 카메라 들이대자 노 포토 노 포토 연발하며 완강하게 손사래치던, 사진 찍히면 자신의 영혼 빼앗긴다고 굳게 믿는 이슬람 사내 뒤로 어디선가 떼거지로 몰려와 목 길게 빼고 카메라에 얼굴 들이대며 활짝 꽃 피던 개망초, 금꿩다리, 까마중 끈끈이주걱 같은 이국의 코흘리개 야생화들 《.. 문예지발표작 2011.02.28
얼음이 산벚나무 발목을 꽉 / 배한봉 얼음이 산벚나무 발목을 꽉 / 배한봉 비음산 용추계곡 소(沼)가 허연 얼음으로, 늙은 산벚나무 발목을 꽉 붙잡고 있다 연분홍 봄날을 계류로 흘려보내기만 했던 소(沼)가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고 겨울부터 미리 산벚나무를 온 힘으로 꽉 붙잡고 있는 것이다 아니, 이제 더는 용서 못한다고 이웃 영진.. 문예지발표작 2011.02.19
예스맨 / 신미균 사진<프로작가와 사진교실>님의 카페에서 캡처 예스맨 / 신미균 집이 날아갔다 오, 예 새도 아닌데 새는 날아가는 것도 보이지만 집이 날아가는 것은 보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날아갔다 천둥 번개 치지 않았고 회오리바람 불지 않았는데 오, 예 한 마디에 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갔다 창도 뒤란도 우.. 문예지발표작 2011.02.19
태엽 / 이이체 사진<동경일어학원>님의 카페에서 캡처 태엽 / 이이체 화염의 번식은 사물의 몫이다 돌멩이들은 공백이어야 무방하다 첼로가 눈사람에게 순례의 말로에는 풍화되지 않을 암석만 모래로 분장한 채 고고하게 앉아 있다 혁대를 두른 동물인형들이 휘둥그레 눈 뜨고 잔다 사랑이 횡포를 부리던 지옥 .. 문예지발표작 2011.02.02
구름세탁소 / 유금옥 사진<석궁 김명호- 사법정화 시위의 진실>님의 카페에서 구름세탁소 / 유금옥 대관령 산기슭, 울타리 없는 집 마당에 새하얀 빨래를 널어놓고 삽니다 뻐꾸기와 종달새가 우리 집을 물고 날아다니는 앞산에 구름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오늘 같은 날엔 산도 종잇장처럼 얇아져서 날아다닙니다 날아.. 문예지발표작 2011.01.31
뜨개질 -백석의 운을 빌어 / 김대성 사진<제주에누리>님의 블로그에서 캡쳐 뜨개질 / 김대성 -백석의 운을 빌어 어머니가 뜨개질을 하시기 때문에 세상에는 눈이 내린다 어머니는 27억 광년을 가야할 거리에 계신다 그러나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시기에 늘 거실 한쪽 연탄난로 옆에서 뜨개질을 하신다 한쪽에 초라한 내가 있다 어머니.. 문예지발표작 2011.01.27
봉숭아 /김미정 사진<다음 자연박물관>에서 켑쳐 봉숭아 / 김미정 우리가 쌓아 올린 돌멩이 하나 꽃잎에 떨어지고 난 그 꽃잎을 손톱에 올리며 오늘 하루를 묶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내게 준 까만 씨앗들이 바람에 날리는 날들이 이어지고 노래는 너무 이르게 끝나버리더군요 달력의 동그라미는 당신의 손톱처럼 .. 문예지발표작 2011.01.13
밀월 / 박무웅 사진<후기로니>님의 카페에서 밀월 / 박무웅 사랑 하나 훔치고 싶다 능소화 핀 후원 담장을 몰래몰래 넘어가 정지문을 밀치고 심장의 숨소리를 죽이고 오동나무에 걸린 달 하나 훔치는 밤을 갖고 싶다 어둠의 보자기에 달빛 환한 사랑을 서리해서 바람소리도 풀빛소리도 그친 지름길로 돌아와서 .. 문예지발표작 2010.12.05
비행법 / 김희업 사진<Daum 영화 천사의 추락>중에서 비행법 / 김희업 그 새는 단 한 번의 비행 기록도 갖고 있지 않다 아파트 화단 귀퉁이로 한 생이 폭삭 내려앉는 끝소리 물론 그것으론 죽음의 단서가 될 수 없다 짤막한 한 줄 비행운도, 추락의 순간을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착지가 서툰 솜씨가 그렇고 공중에 써.. 문예지발표작 2010.10.21
[2010년 63회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당선작]-諺簡文/안채영(安採英) [2010년 63회 <문학사상> 신인문학상 당선작] 사진<아래아 마을>님의 카페에서 캡처 諺簡文 / 안채영(安採英) 죽음의 꼬리처럼 지하의 시간은 길고 길었습니다. 열두 매듭으로 정한 거처는 다 삭아서, 한 번쯤은 돌아누울까도 생각했습니다 이 몸은 뱃속의 아이를 무덤으로 정한 바 있고 아이는 .. 문예지발표작 201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