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옹이」/ 이수정 / 현대시 2003년 12월호

자크라캉 2006. 10. 13. 14:06

 

사진<www.asiawood.co.kr 청목>님의 블로그에서

/  이수정

  그의 상반신엔 가슴에서 등을 관통하는 커다란 옹이가 박혀 있다
옹이를 붙잡고 있는 것은 나무일까  나무는 골목에 쏟아지는  햇빛
이 어지럽다  담벼락 그림자 밑으로 숨어든다  쭈그리고 앉아 고개
를 숙인 대머리 늙은 독수리는  아파트 골목이 서먹서먹하다  그늘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의 가슴엔 새의 영혼이 갇혀 있을까  굽은
등엔 날개를 숨기고 있을까 아니 한 그릇의 물을 숨기고 있을까 물
이 있을까 갈증만 담겨있진 않을까 아니 한 그릇의 물을 숨기고 있
을까 물이 있을까 갈증만 담겨 있진 않을까  먼지나는 골목을 더듬
는 백내장 낀 눈 깊은 바닥에는 넙치가 살고 있을까 쌀튀밥 뻥튀기
봉지를 요새처럼 쌓아놓고  난쟁이 꼽추는 아파트 골목 구석에  앉
아 있다 고개를 숙이고 까막까막 졸다가 퍼득 잠이 깨면 홀린 듯이
세상에 대고 대포를 쏜다  옹이가 빠지고 영혼이 번개치고  커다란
날개가 펼쳐지고 분수가 터지고 넙치가 눈을 뜬다

「옹이」/ 이수정 / 현대시 2003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