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로뎀나무 아래서 / 정이랑<심상 2006년 9월호>

자크라캉 2006. 10. 10. 15:57

 

                           사진<다음 신지식>에서

 

뎀나무 아래서 / 정이랑

 

언제부터인가, 그는

자신의 허물을 벗겨놓고

여러개의 손가락으로 물살을 마구

흔들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구름과, 별 달빛들이 그러하듯

저 홀로 거꾸러져 잎사귀의

무늬를 씻어내자고 외쳐대며

 

누구나 흐르는 물 앞에 서보면

헝클어진 머리카락 담그고

투명한 뼈로 오래 붙박혀

혼자가 되어 있음을 안다

 

몸 안에서 우글거리는 핏방울

더 이상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순간, 말라비틀어진 등줄기에 퍼부어 대는

회초리들의 음성音聲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 모두는 지정指定되어 꽂힌 것이다

지구 속에 떠돌고 있는 나는

지금 어디에 꽂혀 있는가

 

 

정이랑

1969년 경북 의성 출생

1997년 <문학사상> 신인상 시로 당선

시집 : <떡갈나무 잎들이 길을 흔들고> 2005년 시안 황금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