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不완성악보 / 차주일

자크라캉 2006. 9. 2. 09:10

 

 

사진<리알토>님의 플래닛에서

 

월간[현대시] 2006년 6월호

 

 

  완성악보 / 차주일

 

  침묵으로 발효된 말을 품고 비로소 바라보게 되었을 때
  연인은 나의 침묵에서 세레나데를 듣고 있었다
  선율을 암송하는 듯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산책하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이 그리움의 회귀는
  지금의 어둠과 침묵으로 발효되었던 내 말이 같은 조도인 까닭이다
  빛으로 헤진 도시를 내려다보며 어둠을 기워나간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간판들을 훑어본다
  소리보다 밝았던 글자와 조형들이 어둠으로 돌아간다
  전자기타 줄처럼 떨리던 길들이 제 구획의 어둠을 덧대고
  침선에 꿰이는 산동네 쪽창들 한 땀 한 땀 어두워진다
  어둠의 악보에서는 고저장단이 같은 것이므로
  음표가 필요없는 묵음의 악보를 다 펼치고 나면
  우리는 태초의 세레나데를 이식할 수 있을까
  세상 모두 어둠 속으로 돌아가 태아처럼 웅크린 밤
  인간이 만들어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십자가들
  네온 빛으로 축조한 여백으로 도시를 파수하고 있다
  신성불가침의 여백 속으로 어둠을 밀어 넣는다
  영혼의 경계는 극소량의 어둠도 허락하지 않는다
  나의 침선은 빛과 어둠의 소절에서 헛땀질하고 있다

'문예지발표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덕방/조영석  (0) 2006.09.02
책들 / 강해림  (0) 2006.09.02
임서 / 한정원  (0) 2006.09.01
연애의 법칙 / 진은영  (0) 2006.08.26
춤꾼 이씨 / 이대흠<창자과비평>2006년 가을호  (0) 2006.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