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뿔쥐 / 최승호

자크라캉 2006. 8. 26. 00:09

 

 

사진<미디어다음아고라>에서

 

/ 최승호

 

 

처음엔

쥐뿔도 없었다

아무것도 아무개도 없었고

없다는 말이 없었다

있다, 있었다

그런 말은 언제부터 있게 된 걸까?

뿔쥐는

내가 만든 말,

뿔쥐를 그릴 수는 있지만

뿔난 쥐는 어디에도 없다

뿔쥐는 無

누가 수염 난 뿔고양이를 두려워하랴

뿔고양이도 無

뿔고양이가 뿔쥐를 씹어 먹다 쥐뿔을 남겼다 해도

그게 과연 남은 것일까?

쥐뿔도 없고 개뿔도 없는 밤이다

흙비가 온다

황사 비가 반죽해 두루 떨어뜨리니

내일 아침엔 눈을 씻고

세상의 얼룩달룩한 것들을 보리라

 

 

<세계의 문학> 2006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