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프렐류드 / 김언희

자크라캉 2006. 7. 18. 11:28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사진.음악<그린>님의 플래닛에서

 

렐류드 / 김언희

 

변기 속에서

사마귀를 보기 시작하면, 그 사마귀와

허물없는 사이가 되기 시작하면, 벌건 대낮에

내 집 개가 나를 보고 길길이

짖기 시작하면, 있는 줄도

몰랐던 것이

문을 열 때 마다 문 밖에 서 있기

시작하면, 징글징글한 前妻처럼

우연히 마주치고

못 피하고

마주 치기 시작하면, 낯선 곳에서 잠을

깨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모르면서 쉴새없이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손톱에서

발톱이 길어나오기

시작하면, 가방 속의 불길한 습득물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꽃잎 하나

없는 꽃이 말똥말똥 피기

시작하면, 낯짝도

없이 빠안이

쳐다보기 시작하면.

 

 

엘리트 100선 <詩向> 2006년 여름호(2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