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발표작

구두 한마리

자크라캉 2006. 7. 13. 18:12

 

 

                   사진<모든상품 제시가에 드림>님의 플래닛에서

 

 

두 한 마리 / 길상호

 

 

일년 넘게 신어온 구두가

입을 벌렸다 소가죽으로 만든

구두 한 마리 음메- 첫울음을 울었다

나를 태우고 묵묵히 걷던 일생이

무릎을 꺾고 나자 막혀버리는 길,

풀 한 줌 뜯을 수 없게 씌어놓은

부리망을 풀어주니 구두가

길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돌멩이처럼 굳어버린 기억이

그 입에서 되새김질되고

소화되지 않은 슬픔은 가끔

바닥에 토해 놓으면서 구두 한 마리

이승의 삶 지우고 있었다

바닥에서 달아나는 시간을 따라

다시 걸어야 할 시린 발목,

내가 잡고 부리던 올가미를 놓자

소 한 마리 커다란 눈을 감으며

구두 속에서 살며시

빠져나가는 게 보였다

 

 

제7회2005년 전국계간문예지 대전축제 기념사화집

<이슬 속의 바다를 들여다본다>시와 정신사

 

 

 

길상호

1973년 논산출생

2001년<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시집<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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